
갤러리잔다리는 2015년 10월 8일부터 11월 7일까지 박형근 개인전 <텐슬리스 Tenseless>를 진행합니다.
이 전시는 제 9회 다음작가상의 수상자이며,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사진작가 박형근의 열한 번째 개인전입니다. 전시의 제목 '텐슬리스(Tenseless)'는 박형근 작가가 2004년부터 진행해 온 작업 시리즈 명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텐슬리스 연작을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박형근 작가는 우리 삶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 사물, 공간을 작가의 특유의 시선으로 담아냄으로써 모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독특한 사진 세계를 구축해왔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소개되는<Sihwa>, <His objects>, <Decay>, <4AM> 등의 작품들은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낯설고 기이하게 변조시킴으로써 어둡고 우울하지만 몽환적이며 아름다운 그만의 그로테스크한 사진 어법을 보여줍니다.
<Tenseless > 박형근 2015
새가 죽은 자리, 꽃들은 더없이 화려하다. 헐벗은 나무들도 기괴한 얼음치장으로 굳어졌다. 이 사진들은 우울하고 동시에 황홀하다. 암울한 시대는 그로테스크한 취향을 호명한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나무열매에서부터 화려한 꽃잎 위로 흘러내리는 물감, 깨어진 창문에 꽉 들어찬 나무가지에 놓여진 동물 뼈, 심지어 눈 덮인 호숫가 너머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의 흩어짐마저도 기묘하다. 돌이켜보자면 첫 개인전 <태엽감는 새 Wind-up Bird Chronicle, 1999>사진들도 어둡고 몽환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사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사진의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내부에도 있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이미지 생산기술의 실상은 빛에 멍든 은입자와 씻겨내도 꿈쩍않는 화학찌거기들이 빛으로 다시 환원되는 자국이며, 이것이 사진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른다. 이미지 생산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배면에는 언제나 얼룩진 마이크로 우주 빛 곰팡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빛을 먹고 살아가는 박테리아에 잠식당해버린 투명한 생명체가 바로 사진이며, 그것이 썩어 문드러질 때 생성되는 그로테스크한 황홀경에 오랫동안 매료되었던 것이다.
숲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나를 본다. 이 곳에서 출렁이는 숲의 끝과 그 너머의 하늘, 그리고 그 하늘 너머의 우주와 그 우주 너머의 우주를 상상하곤 했었다. 일상의 상념따위는 그저 코 끝 간지럽히는 공기 한 줌 속에 흩어져 버릴뿐이다. 세계 속 나를 찾아가는 과정속에 알아채 버린 바깥에 대한 성찰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것들과 교감할 수 있었던 일도, 숲이 열어준 착란같은 선물이었다. 숲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의 촉수들은 예민하게 뻗어나와 카메라 렌즈 밖 대상들과 함께 어우러졌다. 본래부터 나의 몸 안 어딘가에 있어 왔을 지 모를 감각의 끝에 실을 걸고, 세상의 결과 면을 연결해 나가는 일, 닺힌 틈을 열고 침잠할 수 있는 밝은 눈을 되찾는 것이 사진하는 이유였다. 숲은 이미 주어지고 고정된 것으로 부터 벗어나 비선험적인 상황에 나를 위치시키려는 의지, 거대한 역사의 지평에 쉽게 종속되지 않으면서 유동적인 상태에서 세계와 대면할 수 있는 실천의 첫 무대였다. 특히 늙은 숲은 켜켜이 쌓여진 것들, 삭혀진 채 아직 환원되지 못한 것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서 나의 허기진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물질들로 넘쳐났다. <텐슬리스-Tenseless > 연작은 주관적 지각방식과 느려진 시간성의 확보를 통해, 타자와의 교감을 가시화하려는 태도에서 시작하였다. 그것의 구현은 사진속 사물과 공간이 연출하는 장면, 불완전한 내러티브의 결합,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이 추구했던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당연한 규칙과 조합으로 부터 이탈한 우발적 선택으로써 가능했다. 정상적인 시선으로는 도저히 대면할 수 없는 우울하고 비극적인 현실 상황의 반복, 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난 존재들을 억압하는 힘, 이미 제거 당해버린 야생의 감각, 빛은 우리를 외면한 채 내부를 향해 하얗게 비춰질 뿐이다. 빛의 매체인 사진이 어두운 톤에 물들어 가는 것은 암울한 시대의 매체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필연적이었다.
그동안 <텐슬리스-Tenseless>연작에 등장했던 것들을 열거하자면:
빨간 드레스, 말라 비틀어진 식물, 가짜 꽃, 죽은 새, 썩은 열매, 고인 물, 늪, 변색된 철문, 불타버린 나무, 찌그러진 공, 황금색 반사체, 떨어진 꽃잎, 떨어진 체리, 금간 벽, 쏟아진 물감, 죽은 귀뚜라미, 얼어붙은 나비, 종이 새, 종이 성, 종이 말, 종이 별, 동굴, 종이 집, 붉은 실, 초록 곰팡이, 빨간 전기줄, 나무 틈, 움직이는 새, 그림자, 버려진 가방, 성경책, 여성 속옷, 알약, 여우 굴, 사슴 틀, 푸른 리본, 양귀비, 공작새, 동물 뼈, 폭죽, 깨진 유리창, 얼어붙은 연못, 튜울립, 달, 고드름, 뱀, 담벼락, 꽃무늬 커튼, 사고난 자동차, 까마귀, 허공에 메달린 전구, 숲, 폭죽, 불꽃……, 망각속에 떠도는 것들, 누적되어 변성된 것들, 죽지도 살지도 못한 것들, 환원 불가능하거나 바깥에 머무는 것들, 별볼 일 없는 것들, 일시적인 것들, 보이지 않는 그러나 내 안의 것들과 함께 있는 것들.
갈등과 불안이 끝으로 치달아 갈수록 가열차게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처럼 그로테스크한 현실로부터 능동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추동력은 불온한 사유의 실천에서 비롯된다. 사진으로는 결코 재현할 수 없었던, 그러나 처음부터 사진안에 들어와 있었던 것들, 그것들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뿐이다.

Tenseless-81, Broken II, 2015, C print, 150x191cm

Tenseless-76, Decay, 2015, C print, 150x190cm

Tenseless-84, His objects, 2015, C print, 150x233cm

Tenseless-83, 4 AM, 2015, C print, 150x214cm
출처 - 갤러리잔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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