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양 : 피어난 시간의 퇴적

갤러리도스

2020년 4월 8일 ~ 2020년 4월 14일

흐리게 느리게 함께하다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꽃으로 대표되는 계절은 봄이지만 꽃은 모든 계절에 존재한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강렬히 새겨지고 시간이 흘러 그 향기가 희미해 질 때 즈음 다시 떠오르며 가장 싸늘한 시간조차 결국 지나면 다시 찾아와 마음을 채운다. 역할을 다한 꽃은 메마르고 떨어져도 그 자취를 양분삼아 다시 싹튼다. 마찬가지로 매번 기억하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들은 모여 시간이 흘러 사람을 구성하는 사소한 부분까지 영향을 끼친다. 활동에 득과 실을 계산하여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마음을 지닌 사람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할 때도 있지만 예전의 시련이 오늘의 미소를 가져오기도 하며 지금의 후회가 과거를 값지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박선양은 사람이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남긴 사진이라는 매체를 순환하는 시간의 생명력이 드러나는 꽃과 함께 그려낸다. 

작품은 꽃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기억과 사진이라는 요소로 인해 꽃을 그린 그림인 동시에 일상이 그려진 인물화 혹은 풍경화이기도 하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꽃의 형상은 그 자체로도 작품에 담긴 이야기의 상징이지만 고유의 특성과 입체감을 덜어내고 실루엣이 강조되어있다. 외곽이 두드러지는 꽃의 형상은 마치 90년대 중반 가정집에 흔하게 사용되던 벽지의 패턴을 연상시킨다. 이 패턴은 단순히 벽지의 연상에서 그치지 않고 벽지에 관한 기억이 가장 깊게 새겨졌던 시기인 누군가의 어린 시절 방으로 연결된다. 작품을 관찰할 때 꽃이 구분 지었던 경계의 틈 사이로 보이는 이미지에 집중한다면 사진 속의 사건과 인물들이 마치 완성되지 않은 퍼즐처럼 일부가 소실된 채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저마다의 삶이 다르겠지만 어찌 보면 별것 아닌듯한 꽃무늬 패턴은 지금은 성인이 되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유년기 시절로 되돌아가는 통로이자 그 시간여행으로 다시 재생되는 온전하진 않지만 익숙하게 다가오는 친근한 화면이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사진을 토대로 작업을 진행하며 작품에 담겨진 사진 속 광경에 맞아 떨어지는 밀도로 화면에 꽃을 채워나간다. 꽃은 사진이 멈춰낸 시간의 소음과 사건을 품은 채 화면 전체에 걸쳐 빈틈없이 빼곡하다. 때로는 연못에 빼곡하게 떠있는 연꽃잎처럼 은은히 흐린 기억을 받치고 부유하는 모습이다. 사진의 가장자리를 생략하고 주요 인물만 보이게끔 그려낸 무늬는 분명히 알고 있지만 전부 떠올리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잊혀져갔던 순간이며 바람에 흩날리는 꽃가지를 떠오르게 한다. 이미지가 채워지지 않은 빈공간은 오래된 사진에서 보이는 빛바램으로 보인다. 화려한 부분만 골라서 취하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거스를 수 없는 기억의 한계도 함께 담아냈다.   

모두가 스마트폰 속에 수백 장의 사진첩을 지니고 있고 쉽고 빠르게 꺼내 볼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편리와 풍족함은 간혹 우리로 하여금 순간의 소중함을 무뎌지게 만들기도 한다. 비슷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한들 보여주기 위해 찍은 추억과 간직하기 위해 찍은 추억의 무게는 분명히 다르다. 박선양의 이번 전시인 피어난 시간의 퇴적은 디지털로 빠르고 얇게 세상을 바라보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느리지만 더 깊은 향기를 지닌 이미지를 보여주며 각자의 지난 삶이 다르더라도 편안히 공감할 수 있는 시절로 향하도록 도와준다.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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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박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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