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
글. 이상미 (space xx 큐레이터)
최근 몇 년 동안 지속되는 미술 시장의 호황은 그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작가들에게 많은 고민과 질문을 갖게 했을 것이다. 작품 판매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던 박가인 작가는 이러한 흐름을 목도하며 판매가 잘 되는 작품의 가치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지, 자신의 작업이 그 흐름 속에 편승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해 다양한 고민과 원인분석을 해보며 작가로서 자신의 위치와 작업의 방향을 가늠해 보았다. 이번 박가인 개인전 《Hornystly Love You》는 이와 같은 고민과 질문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그동안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작품의 시장성(혹은 판매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그에 부합하는 일정의 기준을 세워 자신의 누드사진과 페인팅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실행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시장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대형 사이즈의 누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다음으로는 신체 일부에 위치한 작은 페인팅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작가는 판매를 위해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페인팅 전공자가 아닌 그가 그린 작품은 그림의 주요 소재로 선택한 조화artificial flowers나 모형 과일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키치하다. 이는, 이번 전시를 위해 자신을 특정 조건에 위치시키고 그에 맞는 작업 방식과 과정을 재조직한 결과로 자신의 몸을 전면에 내세워 주요 매체로 사용하고 내적 욕망을 꽃, 과일, 나비, 인형 등으로 치환해 대상화하고 있다. 전시 타이틀의 ‘Hornystly’ 또한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단어로, ‘Hornystly Love You-달아오를 만큼 사랑해’라는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가 제시하는 전시 타이틀은 결국, 불특정한 대상에게 보내는 욕망의 표현이자 열렬한 러브콜과 같은 것이다.
전시 타이틀과 동명인 <Hornystly Love You>(2023) 시리즈는 작가의 누드사진을 실사 출력한 작품으로 무표정하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과 신체 일부를 보여 준다. 여기서 ‘보여 준다’라는 것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보여 지는 것’이 아닌 ‘보여 주는 것’은 작가가 주도권을 쥔 매우 능동적인 태도로, 관람자가 작품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볼 수 있도록 작가가 기꺼이 허락한다는 의미이자 신체의 외형을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관람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단숨에 좁히고자 함을 내포하고 있다. 작가의 내적 욕망을 대상화한 페인팅 <100만 원>(2023) 시리즈는 누드사진의 특정 위치에 작은 그림을 배치한 것으로 작업의 맥락 안에서 그림은 상징적 기호로 존재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림 뒤 배경이 되는 신체의 특정 부위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림 뒷면에 비밀스럽게 붙어 있는 USB에는 <Hornystly Love You> 시리즈 중 그림의 배경이 된 작품이 저장되어 있어 작가가 규정한 작품의 물리적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그림 구매 시 작가의 누드사진을 함께 소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작업 방식은 작가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이 혼재되고 전복되어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작가와 관람자와의 심리적 전이를 발생시킨다.
이번
전시 《Hornystly Love You》의 맥락 안에는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이 제시한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오롯이 나 자신에게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외부가 정한 기준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에 관해 작가는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또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을 품고 박가인의 작품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나는 ‘달아오를 만큼 사랑한다’라는 작가의 욕망을 욕망하고 싶은지.
작가 소개
박가인은 2015년
계원예술대학교 프로젝트아트과를 졸업하고 서울,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작가 본인과 유사한 30대 여성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다양한 일화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작가의 개인적인 욕망과 사회적 관계에서 생긴 구조적 모순, 부모로부터 경험한 부조리를 사적인 분노에 머물지 않고 작업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거짓과 진실, 개인과 사회, 남성과 여성, 초년과 중년의 대비되는 갈등과 문제들이 아이러니하게 도출된다. 이러한 복잡한 레이어들을 영상, 출판, 드로잉,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해 작업하고 있다. 또한, 2019년부터 초신진 작가 등용 공간 [육일봉]을 운영하고 있다.
참여작가: 박가인
출처: space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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