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Dec. 22, 2023 ~ April 6, 2024

“저는 전맹(全盲)이지만, 작품을 보고 싶습니다. 누군가 안내를 해주면서 작품을 말로 설명해주었으면 합니다. 잠깐이라도 상관없으니 부탁드립니다.”

미술관에서 이런 전화를 받는다면 우리는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전맹의 미술애호가로서 1990년대 후반부터 미술관을 방문한 미술애호가 시라토리 겐지가 실제로 미술관에 전화를 걸어 던졌던 질문이다. 한편, 지난해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미술관의 직원들은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부터 아르코미술관까지 직접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보는 경험을 했고, 이를 통해 지하철역에서 미술관에 이르는 비교적 짧은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멀고 험난한 여정일 것이라는 사실을 체험했다.

미술관은 보통의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관람객들에게는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또한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쟁터 같은 일터이기도 하다. «미술관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미술관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을 논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5편을 소개한다.

‹내셔널갤러리›(2014)는 프레더릭 와이즈먼이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서 12주 동안 체류하면서 촬영한 작품이다. 전시실에서 조명을 맞추고, 보존실에서 작품을 처리하고, 관람객에게 전시를 해설하는 미술관의 일상이 3시간 동안 담담하게 전개된다. 별도의 사건이나 인물들의 인터뷰 없이 촬영된 이 작품은 ‘내셔널갤러리’라는 거대한 기관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다룬다.

‹미술관›(2017)은 란 탈이 예루살렘의 국립이스라엘미술관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영화이다. 1965년에 설립되고 2017년에 대규모 증축을 거친 국립이스라엘미술관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미술관이다. 이곳의 직원들은 종교, 인종,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 서로에 대해 경계하고 긴장하며, 작품의 선택 및 해석과 같은 주요 업무에서도 종종 이견이 발생하곤 한다.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미술관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곳인 동시에 긴장감이 감도는 격전지와 같다.

우커 호헌데이크의 ‹라익스미술관의 새 단장 - 더 필름›(2014)은 베르메르와 렘브란트 등 세계적인 예술 작품을 소장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을 증축하는 과정을 10년에 걸쳐서 추적한 다큐멘터리로, 미술관을 둘러싼 여러 인물의 직업적 고민과 삶, 갈등이 담겨 있다. 미술관을 통과하는 통행로를 둘러싼 공청회와 경매장에서의 소장품 구입과 예산 배정을 둘러싼 담당자의 고민, 건축 사무소 직원들과 미술관 직원의 고군분투 등 쉽게 해결되지 않는 전시실 너머의 풍경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이 유산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의무를 짊어진 이들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인 게릴라 걸즈는 1995년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미술관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백인 남성 위주의 미술사와 전시를 비판하며, ‘White Balls on Walls’라는 구호를 외친 바 있다. 거기서 제목을 차용한 사라 보스 감독의 ‹화이트 볼스 온 월스›(2021)는 2019년 라인 볼프 관장이 취임하면서 ‘포용성과 다양성(diversity and inclusion)’정책을 미술관 운영 전반에 도입하려는 지난한 과정을 1년 반에 걸쳐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그가 취임하기 전 스테델릭미술관의 소장품 중 무려 96%는 남성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의사결정을 하는 직원 대부분은 백인이었다. 이에 라인 볼프 관장은 소장품 예산의 50%를 유색 인종 작가의 작품 구입에 쓰도록 하고, 직원 채용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도입한다. 이러한 정책들은 실제 업무에서 여러 가지 변수에 직면하고 좌충우돌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 씨, 예술을 보러 가다›(2022)는 앞서 언급한 시각장애인 미술애호가 시라토리 겐지가 미술관을 순례하며 겪는 과정들을 담은 가와우치 아리오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3)의 저자이기도 한 가와우치 아리오 감독은 동행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작품을 ‘보는’ 시라토리 겐지 씨와 함께 2년 여간 직접 미술 전시회를 다니며 작품을 함께 감상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 테이트미술관에서 개별 작품 당 관람객들이 평균적으로 머무르는 시간은 8초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실정을 시라토리 씨의 감상법과 비교해볼 때 미술 감상의 진정한 의미와 방법을 좀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들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 있다. 미술관은 많은 사람들 간의 ‘대화’가 일어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과거에서 내려온 미술품을 돌보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사명을 가진 보존복원가는 함께 일하는 동료뿐만 아니라 수백 년 전 작품을 그린 화가와 액자 제작자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원래의 의도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전시실에 설치된 작품 조명을 점검하는 선배는 후배 직원에게 이 종교화가 원래는 어디에 놓여있었을 것이며, 어떤 빛을 받고 있었을지 상상해보라고 권한다. 미술관이 백인 남성 중심이라는 공격 앞에서 미술관장은 현재의 소장품과 전시가 혹시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한다. 이들 모두가 더 나은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에게, 동료에게, 그리고 역사 속 인물과 미래에 올 사람들과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 역시 이 영화들을 통해 그들의 뜨거운 대화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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