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사진위주 류가헌

Oct. 4, 2022 ~ Oct. 16, 2022

침묵이 깨졌다. 1991년 8월 14일이었다. 김학순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혔다. 그의 증언은 전쟁범죄를 둘러싼 오랜 침묵을 깼다. 이를 계기로 한국을 넘어 북한과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에서도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증거자료 또한 발견되었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 국가권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자행한 전시 성폭력 범죄였다.” 이를 부정하기 위해 침묵을 고수해온 일본도 속속 드러나는 증언 앞에 자신들이 가해자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 침묵이다. 현재 일본 정치가와 역사수정주의자들은 다시금 ‘위안부’의 존재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증언의 순수성을 문제 삼고 피해자들을 향한 혐오를 충동질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너와 너의 말은 거짓이며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니 침묵하라. 듣기 싫다.”

생각해보면 증언과 증언 사이에는 늘 침묵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살아서 돌아왔지만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그것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학순의 증언이 나오기까지 해방 이후 4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가족에게조차 제 고통을 말할 수 없었던 이 침묵의 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질문은 오늘날의 역사왜곡과 혐오의 현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현장에서는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가. 무엇이 들리지 않게 되고 무엇이 침묵을 요구하는가. 보다 선명한 ‘역사의 비극적 피해자’의 이미지, 그런 이미지가 될 때에야 보이게 되는 ‘위안부’ 할머니는 상징만으로 그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까? 보다 완벽한 증언, 보다 순수한 고통을 증명한다면 혐오의 말들을 잠재울 수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피해자의 증언에 착목해왔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보다 깊이 듣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과 말 사이 침묵에 대해. 우리가 다 들었다고 믿었으나 여전히 듣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지워지는 과거의 그림자도, 불행한 역사의 박제도 아닌 한 사람으로서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해. 그럼으로써 끝내 잊지 않을 것처럼 귀 기울이는 것. 왜곡과 혐오 너머의 길은 그런 시도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작가: 안해룡, 이토 다카시(伊藤孝司)
기획: 서영걸
글: 윤성희
영상편집: 홍진훤
디자인: 물질과 비물질
주관: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
후원: 여성가족부

* 연계전시 낯섦과 익숙함 : ODD ADD DD / 2022.10.19 ~ 12.31
대구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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