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재를 위한 도착
글 이지언
《a fist is a fist is a fist》는 두 번의 퍼포먼스와 전시로 이어지는 시리즈 프로젝트(serial project)로 작가의 지난 작업 과정과 같이 몸의 선단이자 다층의 사회적 함의를 가진 ‘주먹’에 집중한다. ‘주먹’은 쥐는 손의 모양, 만나는 장소, 접두사의 속성에 따라 그 성질이 극화되거나 격변한다. 관절들이 구부러지고 엉키는 공간, 각기 다른 손가락들이 지시하는 방향을 한곳으로 모으는 광장으로 기능한다. 프로젝트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곳에 대문자는 없다. 특정한 손이 만든 악력을 진리로 보지 않는다. 모든 손의 기억들은 선험적이며 동시에 경험적이게 된다.
두 번의 퍼포먼스 이후 잔재들은 문래의 외딴 공장을 리노베이션한 공간사일삼에서 모인다. 공간은 지난 사건의 흔적을 기록하듯 담대하게 낯선 구조를 띄고 있다. 이곳에서 전시는 지난 퍼포먼스의 시각적, 촉각적, 청각적 자국과 파편을 남긴다.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는 두 개의 질문을 생산했다.
- 하나의 웅덩이로 모인 우리는 어떤 잡음을 내며 응결하는가. 응결된 집합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 궤를 이탈한 물줄기들은 어디로 향할까. 흡수를 면피한 촉촉한 감각들은 결국 아포리아로 해석할 수밖에 없을까.
거대 질문을 뱉어내는 과정에서 작가와 기획자는 일종의 서사 만들기의 방법론으로 접근했다. ‘주체성'을 가지는 물줄기들은 각자 극화된 특성을 가진 듯 보이나 결국은 하나의 웅덩이로 흐르기도 했으며, 동일한 시간과 비정제된 통일성을 겪으며 다른 방향으로 발화한다. 응결-발화의 도착은 끊임없는 이동과 개별적 욕망 그사이에 발생된 잔재와 파편, 해체 가능성과 원초적인 정복 시도를 끌어온다.
흐름의 어떤 구간에서 체현된 시공간이 물줄기들에게 기억을 부여했고, 이에 따라 발생한 주체성은 공간-시간 변수들을 가로지르게 되며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형식은 리좀적1(Rhizomatic)으로 각각의 물줄기들은 하나의 중심으로 포섭되거나 중앙화되지 않는 개체 고유의 독립적인 성향과 이를 존중하며 또 다른 물줄기와 방울지어 흐를 수 있는 가변성2이 《a fist is a fist is a fist》 퍼포먼스의 맥을 짚는다. <응결 Condensation>에서 물줄기 1과 2는 서로 다른 배경과 욕동으로 각자의 특성을 물화한 ‘무기’로 마찰과 전이, 이를 통한 합의와 공동의 방향성으로의 선회를 도모했다. 물줄기 3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목소리를 내는 중 ‘이해’의 한계에 직면했고, 음성은 다른 물줄기에도 옮겨가며 퍼졌다. 이어지는 <발화 Ignition>에서는 <응결 Condensation>의 마지막 부분으로 돌아와 함께 모여 주먹을 쥐었던 시절과 공동체의 순간에서 각기 다른 수로의 방향, 동결된 함의에서 벗어나 이탈하는 밤을 맞이했다. 의도된 이탈을 위한 시간은 분산되는 서로를 위한 최적의 방법을 추적하며, 또 다른 시작으로 향한다.
지난 퍼포먼스들에서 안무(Choreography)는 고의로 짜여진 장면 안에서 자율적이고 수행적이며 사운드와 상호작용한다. 목소리와 사운드, 그리고 움직임은 리좀적으로 연결되며 서로를 덮어쓰거나 억압하기도 하며 따라가거나 환영하며 자리를 내어주기도 한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했던 《a fist is a fist is a fist》의 마지막 단락인 동명의 전시 《a fist is a fist is a fist》는 응결과 발화를 생성한 물화된 잔재와 자국, 균열과 장치를 모은다. 매달려 흔들리던 무기들과 깨진 세라믹, 축축한 흙. 불완전한 배경 속에 움직이던 물줄기들을 포착(사진)하며, 이를 기록한 렌즈의 이동을 따라 걸었던 걸음(영상)을 남긴다. 반드시 끝이 있는 전시라는 종착지에서 순간을 붙잡으려 하는 꽉 쥔 주먹이 아닌 가볍게 쥔 주먹에서 흙이 바닥으로 흩어지듯 자연스레 탈출하듯 전시를 맞이하며, 주먹을 쥐고 피는 움직임을 담는다.
무릇 잔재란 ‘내일을 위한 것’3이라 홍지호 시인은 말했다. ‘여전히 우리가 내일일 수도 있다는 눈동자’라며 덧붙이기도 했다. 앞으로 나아감을 위해 흔적과 자국들은 지표와 힌트가 되며, 계속해서 다가오는 내일에 대한 아름답지만은 않은 동화와 무정형의 덩어리들을 전달하고 내보낸다. 전시를 통해 지나온 감각들을 하나씩 놓아본다. 연대와 압력, 희극과 비극의 주먹들이 한데 모여 내일로의 또 다른 낙관적 전환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전시를 선보이는 중 억압과 연쇄적인 폭력을 행하는 손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찾아주신 분들께 팔레스타인 의료지원을 위한 자율기부를 권장드립니다. 기부로 마련된 금액은 Human Appeal로 전달됩니다.
1 리좀: 리좀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사이와 중간이고, 종단하면서 횡단하는 동시에 융합하면서 통섭한다. 리좀은 고정된 체계나 구조가 없고 중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질서가 없고 인과관계도 아니며 다층적이고 다원적이다. 인문학 연구소 에피쿠로스, http://www.epicurus.kr/Rhizome 발췌
2 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 꿈꾼문고, 2020, 50쪽.
3 홍지호 시인과 나눈 대화 중 일부를 인용했다.
루킴(b. 1995)
독일 함부르크 태어난 후 루킴은 키프로스, 대한민국, 캐나다, 브라질을 오가며 자란 후 프랑스 그르노블 고등예술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았다. 최근 그는 퍼포먼스 시리즈 a fist is a fist is a fist - Condensation and Ignition (2023)를 보안여관 (Artspace Boan 3)과 초이앤초이 갤러리에서 진행했다. 서울 탈영역우정국에서 개인전 《에코톤: 탈출 역량 (2022)》을 개최하였으며 포르투갈 《Meia-Noite (2022)》 아노제로 ‘21-’22 코임브라 현대미술비엔날레와 프랑스 레낭 현대미술센터 (CRAC 알자스)에서 《Fascination (2021)》, 한국 《인간과 비인간: 아상블라주: 2021바다미술제 (2021)》, 산 마리노 《메디테라네아 19회 젊은 예술인 비엔날레: SCHOOL OF WATERS (2021)》에 참여하였다. 뉴욕 Visaural (2023)과 서울 공간 사일삼 (2023), 웨스 (2023), 파워플랜트 (2022), 경남도립미술관 (2021),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2020-2021), 초이앤라거갤러리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아트선재센터 (2023), 프랑스 막발 미술관 (2019)과 카디스트 파리 (2019)에서 퍼포먼스 행사를 진행하였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2021)와 김해클레이아크미술관(2020) 입주 작가로 생활하였으며, 제7회 Cross Award - COLLATERALE (2023-2024)와 ARKO 다원예술지원금(2023),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2022)에 선정되었다.
이지언(b.1994)
2022년부터 2023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20년에서 2022년까지 부산비엔날레 전시팀에서 근무했다. 《a fist is a fist is a fist_condenstation》 (보안1942, 서울 2023), 《유사자아와 파레이돌리아》(퍼스나갤러리, 서울, 2023), 《Contrology》(Hall1, 서울, 2022), 《에코톤: 탈출역량》(탈영역우정국, 서울, 2022), 《Fragile Zone》(Future Society, 서울, 2022), 《물속의 겨울잠 Underwater Hibernation》(플레이스 막3, 서울, 2021), 《Emerging Landscape;New Nomarlity》(Royal West of England Academy(RWA), 영국 브리스톨, 2019) 등의 전시를 기획 및 공동 기획했다. 2023 Unfold X(서울융합예술축제) 기획자캠프에 선정되어 《느리고 빠른 이식 A Deliberate and Rapid Transplant》를 전시 중이다.
작가: 루킴
기획: 이지언
퍼포먼스: 루나, 루킴, 신채은
사운드: 김수진, SEESEA
영상: BYOA Project(김햇살, 윤성준)
사진: 양승욱
<발화> 조명 및 설치 도움: NACA
디자인: 김국한, 임주연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 공간사일삼(413BETA)
출처: 공간사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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