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빠름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듯하다. 우리는 인터넷, 배송, 이동, 교육, 의료 등 많은 분야에서 빠른 속도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급속히 성장을 이루며 발전해 온 우리 사회는 폭주기관차처럼 매섭게 달리고 있다. 시간은 곧 재화이기 때문에 빠름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고, 느림은 곧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늦추려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기후변화의 임계점에 도달하는 지구, 배출된 쓰레기에 점령당한 생태계, 빠른 가치에 의해 실격당한 자들’등의 잔해가 남았다. 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것이 제공하는 효율과 편의는 진정 추구되어야 할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재조명하고자 하는 ‘추구되어야 할 가치’는 바로 ‘느림’이다. 느림은 빠름의 대안으로 제시되며, 빠름이 빚어내는 여러 부작용들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 각 도처에는 느림을 통해서 다양한 분야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다. 슬로 푸드(slow food), 슬로 머니(slow money), 슬로 시티(slow city), 슬로 미디어(slow media) 등의 움직임은 모두 빠름에 대항하며 자발적으로 지역사회의 긍정적인 문화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런 문화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범세계적 연대를 통해 인류가 공동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널리 알린다.
이번 전시에서 10명의 미술가들은 각자의 확장되는 기호를 통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곳곳마다 ‘빠름의 가치’가 뒤얽혀 일상 깊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시에는 ‘빠름에 대한 비판’과 ‘느림에 대한 고찰’이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서 주체적으로 속도의 패러다임 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눈을 가렸던 안개를 걷어내어 ‘느리게 산다는 것’의 가치를 통해 담론을 형성하고 행위들을 실천함으로써 ‘빠르게 산다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참여작가: 세나클(10명) 김성재, 남에스더, 문재원, 백승현, 안지수, 이승은, 이은수, 정혜은, 조찬미, 허지희
출처: 공간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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