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나 개인전: 몸이 말하려고 할 때

별관

Feb. 16, 2024 ~ March 3, 2024

‘남하나’는 한 동안 작업이 뜸했다. 조용히 작업을 이어 오긴 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주로 ‘불나방’이라는 이름으로 페스티벌과 관련 분야에서 기획자로 활동했다. “아무리 갈구해도 나에 게 돌아오지 않았던” 미술 작업과는 달리, 일은 “내가 한 만큼” 결과가 나왔다. 그 이름에 걸 맞게 일 했다. 겁 없이. 불 속으로 뛰어들 듯. 맹렬히. 활활.

실제로, 불나방이 불을 향해 날아드는 것은 불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빛을 향해 나는 특성 때문이다. 그렇게 날다보면 나선을 그리다 결국 불 속으로 들어간다. 남 하나는 알게 되었다. 나를 태워 죽음을 선택하는 삶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대신 자신의 내면으로, 삶 속으로 뛰어 들어가, 새로 태어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요가와 명상을 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몸과 마음의 긴밀한 연결을 경험하고, 그 결과물로 나온 작업물로 전시를 열기로 했다. 바로, 남하나의 첫 개인전 <몸이 말하려고 할 때>이다.

작가는 ‘개인의 서사에서 발현되는 불안의 징후를 포착하는 작업’을 해 왔다. 특히 여성신체(몸)을 통해 역사, 사회, 신화, 신비적 맥락을 선형적으로 그렸다.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불안한 여성의 위치와 생존에 관심을 기울이던 작가는, 자신의 몸이 출발했던 곳, ‘엄마’로부터 이 전시를 풀어낸다.

작가의 어머니는 실질적 가장으로 가정 경제를 책임지며 두 아이를 길러냈다. 대형마트의 정육코너에서 근 10년을 일했으나, 2022년 여름 강제 해고 통지를 받았다. 그의 삶에서 근면과 성실으로 쌓아왔던 자존감, 자부심, 동료와 일터에 대한 신뢰가 우르르 무너졌다. 슬픔과 분노에 이어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우울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마음이 무너지자 몸도 함께 무너졌다. 어머니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온 몸의 발진으로 발현하여 순식간에 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는 어머니의 ‘몸이 말하려고 할 때’를 포착한다. ‘엄마의 몸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에서 시작된 물음은, ‘나의 몸은, 인간의 몸은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는가’, ‘감정의 표현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의 몸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에 이르러 요가를 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작가는 요가와 소마(soma)이론을 통해 몸의 감각을 인지하고 통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엄마의 몸에 나타난 현상을 통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고, 트라우마로 인해 생긴 몸의 상흔을 아크릴 페인팅으로 표현했다.

남하나는 초등학생시절 ‘사포같은 엄마 손’이라는 시를 통해 이미 엄마의 신체 일부를 ‘모래’ 의 촉감에 비유하여 표현한 바 있다. 이번에 전시하는 일련의 작업에서, 그는 모래를 캔버스 전면에 골고루 바른다. 그리고 엄마의 피부처럼 ‘사포같은’ 화폭 위에 타투 하듯 이미지를 새기고, 연고 바르듯 물감을 겹겹이 바른다. 그의 작업에는 심장, 폐, 눈, 손과 다리같은 인간의 신체 일부가 클로즈업 되어 등장한다. 모래의 질감이 살아있는 바탕과, 그 위에 새겨진 어둡고 낮은 채도의 컬러 이미지가 빛에 반사되면서, 거칠고 반짝이는 질감을 만들어 낸다. 신체 일부를 과감하게 선택하여 화폭 중심에 드러낸 직설적인 표현 방식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지극히 날것인 이미지와 컬러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면서도, 간절한 기도처럼 성스럽다.

이 작업의 시작인 ‘감정장기(One’s Heart)’ 시리즈는 심장, 폐, 자궁 등 신체 내 기관을 화면 가득 채워 그리고, 그 주변의 여백에 흐르는 듯한 패턴을 배치한다. ‘심안(心眼)’ 시리즈 또한 이와 결을 함께한다. 동그란 화폭의 중심에 고통스러워하는 눈 한 쪽과 그 눈을 아프게 하는 거친 식물의 부분을 배치시킨다. 그리고 이 이미지를 둘러 보호와 치유의 결계를 치듯 패턴을 둘러 장식한다. 이러한 보호와 치유에의 열망은 ‘사랑의 손짓: 핑거 하트(Finger Heart)’와 ‘사랑의 손짓: 무드라(Mudra)’ 연작으로 이어진다. ‘사랑의 손짓: 핑거 하트’의 시작은 어머니 에게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 방법으로 작가는 손으로 만든 다양한 하트의 모습을 선택한다. 그러나 작업이 진행되면서 이 선혈이 낭자하는 듯한(실제로 작가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abject) 이론1)을 기반으로 작업해 왔다) 붉은 손 하트들은 손의 이미지를 넘어 인간의 다양한 신체 기관으로 다가왔다. 이후 불교에서 불·보살이 깨달은 진리나서 원을 나타내는 손의 모양에서 기인한 ‘무드라(수인)’을 흑백의 만다라 구조로 표현한 ‘사랑의 손짓: 무드라’ 시리즈, 이콘(icon)화의 구조를 차용하고 성모마리아의 포즈에 어머니의 얼굴을 얹은 ‘마더 시리즈(Mother Series)’작품을 통해, 어머니와 자신에게 향한 위로를 넘어, 인간의 존재, 마음, 신체에 대한 사랑과 존중, 위로를 담는 보편적인 사랑으로 그 의미를 확대한다.

요가에는 서서 수행하는 선자세의 기본인 타다아사나(tadasana)가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타다(tada)’는 ‘산’을 뜻한다. 그래서 이를 산자세, 마운틴포즈(mountainpose), 사마스티티(samasthiti)라고도 부른다. 두 발 전체가 바닥에 닿는 접촉면을 땅에 심듯 굳게 딛고, 견고하고 고요하게 몸의 중심을 찾아 세우는 이 자세는 요가 수련의 시작 동작이 되곤 한다. 타다아 사나의 핵심은 움직이지 않고 서 있기가 아니다. 사실 이런 몸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숨을 쉬고 있으므로. 숨의 드나듦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따라서, 타다아사나는 발바닥 아래 땅과 머리 끝 위의 하늘 사이 공간에 내 몸을 두고, 우주와 나를 연결시키며 흔들림을 온전히 맞이 하는 ‘연결하기’와 ‘균형잡기’의 과정이다.

남하나는 ‘온전히 땅에 닿는 연습’에서 땅을 딛고 있는 발과 손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작가는 “그 자리에 잘 서 있고 싶다”말한다. 짐작건대 아마 그의 ‘잘 서 있기’는 이 타다아사나의 모습이 아닐까. 작가는 흔들리지 않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 너머 세계와 연결하고, 온전히 흔들림을 맞이하며, 변화의 과정을 마주하고 싶다는 뜻이리라. 흔들리는 시작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중이리라. 그래서 이 첫 전시가 귀하다. 잘 서는 이는 잘 걷고 잘 뛰게 될 것이므로. 우리 도 지금 여기 서서, <몸이 말하려고 할 때>를 조용히 들어보자.

1) 신체에서 배설하는 혐오스러운 것들(타액, 오줌, 똥, 정액, 생리)이 여성의 주체성을 찾는 힘의 원천으 로 작용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남하나가 사용하는 붉은 컬러는 생리혈을 연상시킨다.(필자 주.)


참여작가: 남하나
글: 김연임
사운드: 호와호
사진: 안부

출처: 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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