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은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 및 카자흐스탄간의 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사진작가 빅토르 안(Виктор Ан)이 기증한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일상 사진 352점을 바탕으로 특별전 《까레이치, 고려사람》을 연다.
전시는 지난 세기,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중앙아시아의 낯선땅에 흩뿌려진 한민족 동포들이 정착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일상의흔적을 그린다. 전시된 60여 점의 사진에 표현된 고려인의 일상에서는이국적인 현지의 주류 문화와 고려인 공동체가 유지해 온 오랜 전통, 그리고멀리 떨어진 조국의 영향들 사이에서 중첩된 정체성을 형성해 온 고려인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작가는 자신만의 언어, 스타일, 테마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80년대 중반쯤, 고려인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생각이 들었고,
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 빅토르 안
빅토르 안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 사진작가이다. 그는 소련 시절이던 1978년부터 고려인을 위한 민족어 신문 《레닌기치(Ленин киӌи)》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 마찬가지로 민족어 신문인《고려일보(Корё ильбо)》를 거치며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구소련지역고려인의 역사와 생활상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해 오고 있다.
고려인의 시점으로, 고려인의 삶과 역사를 포착한 그의 작품들은 한민족디아스포라 연구에 유용한 자료라는 점은 물론, 지금껏 국내 어디에도기증·소장된 바 없는 희소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이를높이 평가하여 <재외한인동포 생활문화조사: 중앙아시아>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22년 5월 빅토르 안으로부터 352점의 사진을 기증받게 되었다.
전시는 ‘일생의례’, ‘세시’, ‘음식’, ‘주거’ 등 민속 분야에서 익숙하게 사용되어 온 키워드로, 9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고려인의 생활문화를 보여준다. 이 사진들이 전달하는 공통적인 인상은 익숙함과 낯섦이라는 모순적인감상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이는 고려인의 생활상이 여러 문화에 기원을둔다양한 삶의 양식들을 자원으로, 상황과 환경에 맞춰 재구성된 것이기때문이다. 여기에는 함경도를 비롯한 한반도 동북지역의 전통과, 소련시절의 민족 정책으로 크게 영향을 받은 러시아 문화, 그리고 우즈베크 족이나카자흐 족 등 주변 민족들, 그리고 현지의 자연환경 등 다양한 문화적자원과 요인들의 상호작용이 있었다. 우리가 고려인의 생활상에서 익숙한듯낯선 인상을 받는 것은 한국문화를 바탕으로 어떤 공통점을 찾아낼수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대단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부끄러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친구들과
하늘 아래 우리들의 자리와 권리를 주먹으로 쟁취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 빅토르 안
소련 시절 이래로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통용되는 러시아어에서는 한국인도, 조선인도, 고려인도 모두 ‘까레이치’(Корейцы)이다1). 영어의‘코리안’(Korean)처럼 러시아어에서 이들의 구분은 모호하다.
그에 반해 고려인들은 스스로를 ‘고려사람’(Корё сарам)이라고 말한다. ‘고려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고려인들이 그들 조상들처럼 연해주의조선인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조국의 한국인과는 구별되는 어떤 다른범주의 공동체라고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이 고려인 공동체를 떠받치는 것은 분명 이역만리 중앙아시아의 낯선땅에 끌려와 생존과 정착을 위해 세대를 거듭하며 고군분투해 온 기억이다.
그것은 과거의 조선인도, 오늘날의 한국인도 갖지 않은 고려인만의 경험인것이다. 전시에 공개된 사진에서 발견되는, 한민족의 전통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의 문화가 융합된 생활상은 고단한 이주와 정착의서사가 만들어 낸 다채로운 증거이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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