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학 개인전: Warehouse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Nov. 22, 2023 ~ Dec. 9, 2023

‘수단’이란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방법과 도구를 이르는 말이다. 즉 수단은 선행하는 목표를 전제로 뒤따르는 것들을 칭한다. 목표가 있고, 목표를 위한 수단이 있다. 길고 지루한 과정 끝에 짧은 결과가 주어진다.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일들은 이런 순서와 몫으로 전개된다.

반대로 목표보다 목표를 추구하는 활동에 가치를 두는 일이 있다. 결과를 위해 수단을 취하지 않고, 수단을 위해 결과를 지정 받는 일. 이런 종류의 일들은 건조한 삶에 윤택을 더한다. 목표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수고스러운 행위 모두가 나름의 의미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미술이 그러한 일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김준학의 첫 개인전 《Warehouse》는 그가 전시라는 목표를 위해 일궈온 행위들을 개방하는 창고(warehouse)이자 인벤토리(inventory)이다. 조각으로 가득 찬 전시장은 작가가 선택하고, 결정해온 행위의 과정을 조각이라는 물리적인 결과물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전시와 조각, 또는 조각이라는 결과물과 조각을 만드는 행위 사이의 동기 역전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그보다 먼저, 조각하는 행위를 통해 이룬 결과와 조각이라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 어떻게 구분될까?

김준학은 작업하는 행위를 게임에 빗댄다. 그는 게임 속 퀘스트를 하나씩 깨나가듯 개별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작업을 일종의 게임으로, 스스로를 플레이어로 설정한 그의 작업은 어떤 측면에서 굉장히 자연스러운데, 목표와 수단의 역전을 이루는 또 다른 일이 바로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비롯하여 동시대 문화예술 행위를 연구해온 C. 티 응우옌(C. Thi Nguyen)은 게임을 일상 세계로부터의 동기 역전을 일으키는 ‘행위성의 예술(the art of agency)’이라 정의한다.₁ 그에게 게임은 “인간의 실천성(practicality)”, 다시 말해 결정하고 “행위 하는 능력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고유한 예술”이다.₂ 더하여 그는 게임의 목표(goals)와 목적(purpose)을 섬세히 구분해야 함을 역설한다. 이는 각각 ‘행위의 결과’와 ‘행위 하는 이유’로 치환되는 것으로서, 둘은 완벽히 일치할 수도, 하나가 다른 하나 뒤에 잇따를 수도, 서로 어긋나 있을 수도 있다. 응우옌이 주목하는 것은 목표와 목적의 어긋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다.₃ 고투를 맛보기 위해 승리를 추구하는 분투형 플레이 안에서 목표와 수단의 관계는 뒤바뀐다.

다시 김준학의 조각으로 돌아와보자. 그의 조각은 게임 속 번쩍이는 무기나 아이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손으로 다듬어진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다. 날카로운 윤곽과 달리 고르지 않은 표면은 작가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에 수반된 더딘 행위의 단계를 가시화한다. 조각이라는 임무를 수행한 플레이어, 즉 작가가 행한 일련의 행위가 하나의 덩어리 안에 전부 기입되어 있는 것이다.

게임이 플레이어의 실천을 농축하듯,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미적 요소를 조각이라는 조형물 안에 농축한다. 뼈대를 세우고, 점토로 살을 붙인 뒤 형태를 다듬어 채색하는 분투의 과정은 작가의 조형 능력과 완성된 결과물 사이, 작가 자신과 세계 사이의 조화를 향한다.이는 오로지 작가 자신에게만 허락되는 조화로움의 경험이자, 작업이 주는 미적 경험이다.

김준학이 ‘조각의 행위’를 통해 이룬 매일의 성취(목적)는 일시적으로 열리고 닫힐 전시(목표)를 넘어서는 무엇이다. 전시는 그에게 주어진 일회용 목표로, 개별 조각 행위에 이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김준학은 조각을 ‘한다’. 다른 매체와 달리, 조각 뒤에 따르는 ‘-하다’라는 동사 어미는 조각에 내재된 행위성을 언어화 한다. 앞으로 지속할 작업을 위해, 그의 미적 경험을 바깥으로 확장한 이번 전시는 또 다른 이정표로 작용할 것이다. “어떤 행위는, 그 행위가 해내는 것 때문에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 글: 모희

1 C. 티 응우옌, 이동휘 역, 『게임: 행위성의 예술』, 워크룸프레스, 2022, 9-35쪽 참고.
2 위의 책, 14쪽.
3 같은 책, 16쪽, 21쪽. 게임에서 목표란 맨 먼저 결승선에 도달하거나 공을 바구니에 더 많이 넣는 것, 점수를 가장 많이 따는 것 등 게임을 하는 동안 이루고자 겨냥하는 목표물(target)이다. 반면 게임 플레이의 목적에는 재미나 스트레스 해소, 능력치의 향상, 어려운 과제를 달성, 심지어는 스스로의 능수능란한 행위가 지닌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일 등이 있을 수 있다.

참여작가: 김준학 Kim Jun Hak
텍스트: 모희
디자인: 이민규
주최 및 주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출처: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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