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강 : 시간의 흔적

갤러리도스

2020년 9월 16일 ~ 2020년 9월 22일

천진난만하고 경이롭게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사람이 빚어내는 모든 행위와 사물은 그 창조자 역시 필멸성을 지닌 생명체이기 때문에 수명이라는 성질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고난 이후의 평안을 꿈꾸며 어린 존재를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를 아름답게 꾸미고 구성원들은 이를 지속시키려 노력한다. 예술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 중 일부를 섬세한 도구와 만질 수 없는 상상에 바쳐 쓸모없는 물건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나타난 무겁고도 가벼운 행위는 전시라는 한정된 시간의 반복과 이를 찾아오는 관객의 시간과 더불어 세상과 사물에 죽음이 아닌 생명을 불어 넣는다.

시간이라는 이야기가 담긴 작품은 그 형상을 막론하고 무게를 지니기 마련이다. 비판적 시각이 담긴 암울한 세태나 역사적 사건을 다룰 경우도 물론이고 돌이킨 추억이나 속세와 다른 모양의 해방감을 지닌 작품 역시 어른의 눈에 바라보는 인과와 이면이 함께 보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동물의 형상으로 빚어진 김은강의 작품들은 아이가 즐거이 바라보는 듯 천진난만하고 무신경한 쾌감까지는 아니어도 작품 전반의 분위기를 미소 지을 수 있을 정도로 환기시켜주며 긴장감보다는 편안한 감상을 유도한다. 작품은 물질을 쌓아올리는 원초적인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길고 얇은 한 줄의 흙은 중력을 거슬러 작가의 관념을 휘어 감으며 생명을 얻는다. 흙의 경계가 만나는 접합부를 매끄럽게 채우거나 제작 과정에서 반드시 가해지는 압력을 작위적으로 가리지 않았기에 채색 이후에도 드러나는 누추한 손맛이 느껴진다. 

제작자의 손을 채운 뼈와 근육이 떨리면서 만들어낸 단순한 형상에는 작가가 처음 흙을 주물렀을 당시의 감촉과 오늘까지의 기억이 담겨 있다. 작가의 흙 안에는 물과 불이라는 지구가 최초로 지닌 두 가지 힘이자 생명의 시작과 파괴라는 양면성을 무탈하게 버텨낸 시행착오의 시간이 담겨있다. 그로 인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기성품이 지닌 매끄럽고 광택이 흐르는 마감과 정 반대의 성질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김은강의 동물 조각은 장인의 기품을 다리에 심은 채 빛나며 서있다. 마치 붕대에 감겨진 동물 미라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인해 작품은 사람이 동물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경외감과 즐거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유약 처리된 표면에 붙어있는 미세한 기포의 흔적이 차분한 색과 만나 작품의 피부를 별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보이게 한다. 

먼 과거의 사람들에게 상상으로 그려졌을 미래의 존재인 우리들은 복잡한 뼈대로 하늘을 찌르는 탑을 오르내리며 철과 플라스틱으로 다듬어진 첨단의 시대에 살과 근육을 맡기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의 만질 수 없는 마음을 채우는 것은 최초로 등장한 순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은 예술이다. 손바닥에서 부드럽게 문지르면 빠르게 등장하는 시간의 기술이 관객의 발걸음을 전시장으로 이끌었고 작가는 지구의 품에서 비롯된 흙을 오래된 방법으로 다듬어 보여준다. 이렇게 각자가 다르게 쥐고 태어난 시간은 예술과 감상을 통해 연결되고 주인이 떠난다 해도 그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있게 된다.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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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김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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