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선 개인전: 평평한 것들 Oksun Kim: Flatness of Things

성곡미술관

2023년 6월 9일 ~ 2023년 8월 13일

김옥선(b.1967, 서울)은 사실성과 객관성에 충실한 사진으로 우리 사회의 주변적 존재와 풍경을 새겨온 작가다. 떠남과 머묾, 차이의 공존, 경계에 선 이들에 주목하는 그의 시선은 결혼 이후 건너간 제주에서 30년 가까이 살며 겪은 이주의 경험과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이방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성곡미술관의 ‘한국중견작가초대전’으로 마련된 《평평한 것들》은 주체와 객체, 문화와 자연의 대비 넘어 차이를 딛고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의 초상을 평평한 시선으로 담아낸 김옥선의 지난 20여 년의 작업을 나란히 펼쳐 보인다. 

2023년, 김옥선은 《신부들, 사라》와 《아다치 초상》 연작을 통해 20세기 초반부터 현재까지 디아스포라적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확장한다. 그의 사진은 우리 현대사를 이뤄온 이름 모를 얼굴들을 환기하는데, 익명화된 이 얼굴들은 시공간을 넘어 서로를 비춘다. 중국, 몽골, 베트남 등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니고 한국으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들이 모습을 뽐낸 초상에서 20세기 초 하와이로 간 사진신부들의 앳된 얼굴들이 겹쳐 보이고, 고국의 향취를 담은 물건들이 이국의 생활양식과 공존하는 재독 간호사들의 초상에서 결혼, 유학, 취업 등 각자의 이유로 일본에 머물며 살아가는 이들과의 연결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거시적인 목적과 성과에 기대어 기록되거나 부풀려진 서사 속에서 소비되어 온 이 개별 주체들을 김옥선이 달리 그려내는 방식이다. 김옥선은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이 존재들의 주체성에 주목하며, 새로운 땅에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 연대하며, 고국에서 지낸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도 경계 밖으로 늘 미끄러지는 이들의 존재를, 김옥선은 사진을 통해 움켜쥔다. 오랜 시간 대상을 바라보고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그의 다큐멘터리 초상은 우리로 하여금 사진 속의 대상을 직시하고 그 이면의 의미를 마주하게 한다. 대상이 그 장소에 실재함을 기억하고 증거하는 사진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며, 실물 크기로 확대된 사진 속 얼굴과 시선을 교환하게끔 하면서 말이다.

나아가, 김옥선의 사진에서 인간, 자연, 사물은 평평한 세계에 놓여 서로를 가리켜 보인다. 이국적인 낙원을 욕망한 인간에 의해 이식된 야자수가 어느덧 제주를 상징하는 식물이 되었듯, 김옥선은 제주의 나무들에서 그간 담아왔던 이방인들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고 말한다. 작가는 새로운 터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이 존재들을 떠올리며 ‘야자수 인간’을 제시한다. 야자수의 외양을 하고 제주 곳곳의 풍경에 이질적으로 녹아드는 야자수 인간의 초상은 이들 각자를 연결하고 상징하며, 나아가 인간/자연, 유기체/비유기체 등의 구분을 교차-횡단하는 존재에 대한 그의 상상적 산물이다.

그의 카메라는 뒤엉킨 잔가지와 넝쿨, 이끼 낀 나무 둥치, 길 밭의 볼품없는 야자수와 같은 ‘주변적’ 존재들을 지속적으로 기록한다. 무분별한 개발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의 제주에서는 이 평범한 풍경마저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 특별할 것 없는 존재들은 여전히 사진 밖으로 생명력과 존재감을 발산하는 듯하다. 버려진 탁자, 손때 묻은 온도계, 우두커니 놓인 선풍기 등 김옥선이 초상사진으로 담아낸 사물들 역시 그들이 자리한 장소의 흔적과 관계의 기억을 품은 채 존재감을 내뿜는다. 이처럼 그가 담아낸 자연과 사물의 장면에는 이들을 독자적인 객체이자 존재로서 호명하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 있다. 김옥선은 우리의 세계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비유기체적인 사물들이 함께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지는 것임을 사진을 통해 아로새긴다. 

이처럼 2차원 평면에 인화된 사진 매체의 고유한 평면성을 넘어서, 김옥선의 카메라에 담긴 대상들은 인간, 자연, 사물의 구분과 인종과 젠더 등 각종 위계에서 자유로우며 평평한 존재론적 지위를 지닌다. 각자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그의 사진은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며 ‘우리’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그러쥘 때, 서로가 정박해 있는 자리를 긍정할 때 우리 안에 자라날 환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작가 도슨트
2023.6.10. (Sat) 11am, 성곡미술관

아티스트 토크
박상우 사진학자 × 김옥선
2023.6.24. (Sat) 2pm, 성곡미술관

작가 도슨트
2023.7.23. (Sun) 2pm, 성곡미술관

참여작가: 김옥선 Oksun Kim

출처: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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