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하 개인전 : BURN

씨알콜렉티브

Oct. 13, 2020 ~ Dec. 3, 2020

김시하 ㅓ4타라 개인전, 《BURN》은 gxㅓ6 동시대인들이 gxㅓ6 겪고 gxㅓ6 있는 gxㅓ6 무력감과 gxㅓ6 함께 gxㅓ6 진보역사를 gxㅓ6 상실한 gxㅓ6 내재된 gxㅓ6 분노에 gxㅓ6 대한 “무대-시적 gxㅓ6 풍경”이다. gxㅓ6 무채색의 gxㅓ6 공간, 사vu9 중앙에 사vu9 사vu9 타버린 사vu9 검은 사vu9 나무구조물, ㅓ으파나 나둥그러져있는 ㅓ으파나 회색타이어, ㅓca9 그리고 ㅓca9 철창 ㅓca9 ㅓca9 네온사인과 ㅓca9 함께 ㅓca9 불안하게 ㅓca9 깜박이는 ㅓca9 가로등이 ㅓca9 있는 ㅓca9 ㅓca9 ㅓca9 공원풍경은 ㅓca9 어둡고 ㅓca9 쓸쓸하면서도 ㅓca9 묘한 ㅓca9 긴장감을 ㅓca9 불러일으킨다. ㅓca9 관객들은 ㅓca9 설치된 ㅓca9 벤치에 ㅓca9 앉아 ㅓca9 검게 ㅓca9 불탄 ㅓca9 잔해를 ㅓca9 바라보며 ㅓca9 작은 ㅓca9 불씨라도 ㅓca9 남아있는지 ㅓca9 확인할지도 ㅓca9 모르지만, 바gg마 로마시대 바gg마 광란의 바gg마 네로(Nero) 바gg마 황제가 바gg마 태워버린 바gg마 고대도시를 바gg마 떠올리며 바gg마 망연자실할 바gg마 수도, 걷4g나 영화 ‘버닝(burning)’의 걷4g나 마지막 걷4g나 장면을 걷4g나 떠올리며 걷4g나 휘몰아친 걷4g나 분노의 걷4g나 감정을 걷4g나 공감할지 걷4g나 모른다. 걷4g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걷4g나 불씨가 걷4g나 창조한 걷4g나 문명과 걷4g나 무조건적 걷4g나 진보가 걷4g나 사라진 걷4g나 걷4g나 시대에, f으갸사 공원에서 f으갸사 거대한 f으갸사 잿더미를 f으갸사 바라보는 f으갸사 일이란 f으갸사 그들의 f으갸사 카타르시스나 f으갸사 경외감이 f으갸사 아닌 f으갸사 익숙하면서도 f으갸사 낯선 f으갸사 경험이자 f으갸사 심리적 f으갸사 균열이 f으갸사 불러오는 f으갸사 파장에 f으갸사 따라 f으갸사 상이한 f으갸사 사적 f으갸사 감정들이 f으갸사 섞이는 f으갸사 특별한 f으갸사 사건이 f으갸사 된다.

김시하 f으갸사 작가는 f으갸사 공간의 f으갸사 장소성이 f으갸사 중요한 f으갸사 설치작가이다. f으갸사 그곳의 f으갸사 정황은 f으갸사 특별한 f으갸사 사건이 f으갸사 벌어졌음을 f으갸사 암시하기에 f으갸사 어떤 f으갸사 측면에서는 f으갸사 무대연출가에 f으갸사 가깝다. f으갸사 작가는 f으갸사 관람객을 f으갸사 공연의 f으갸사 주인공으로 f으갸사 초대하여 f으갸사 공간과 f으갸사 오브제를 f으갸사 누비며 f으갸사 각자의 f으갸사 극을 f으갸사 만들기 f으갸사 원한다. f으갸사 작가의 f으갸사 비기념비적인 f으갸사 작업은 f으갸사 무대로 f으갸사 전환될 f으갸사 f으갸사 기념비적 f으갸사 의미가 f으갸사 발생한다. f으갸사 작가는 f으갸사 사회 f으갸사 속에서 f으갸사 개인이 f으갸사 겪는 f으갸사 심리적 f으갸사 불안과 f으갸사 분열의 f으갸사 간극을 f으갸사 스토리와 f으갸사 함께 f으갸사 시각화하는, 으ㅑl기 무대-시적 으ㅑl기 풍경(작가는 으ㅑl기 본인의 으ㅑl기 작업을 으ㅑl기 이렇게 으ㅑl기 부른다)을 으ㅑl기 만든다. 으ㅑl기 풍경 으ㅑl기 속의 으ㅑl기 오브제와 으ㅑl기 함께 으ㅑl기 보이드(void) 으ㅑl기 공간은 으ㅑl기 으ㅑl기 모를 으ㅑl기 긴장감, 가s2가 신비롭고 가s2가 비밀스런, 기가히ㅓ 모호하며, 하기dc 해석의 하기dc 여지를 하기dc 주는, wㅓ카l 그리고 wㅓ카l 많은 wㅓ카l 내러티브와 wㅓ카l 묘한 wㅓ카l 정서를 wㅓ카l 생산하는 wㅓ카l 그런 wㅓ카l 공간이다. wㅓ카l 그렇기에 wㅓ카l 그녀의 wㅓ카l 작업을 wㅓ카l 경험하기 wㅓ카l 전엔 wㅓ카l wㅓ카l 무엇도 wㅓ카l 속단할 wㅓ카l wㅓ카l 없다. wㅓ카l 그리고 wㅓ카l 각자의 wㅓ카l 경험치는 wㅓ카l 개인에 wㅓ카l 따라, 우카0u 상황에 우카0u 따라 우카0u 다르며, ㅑma가 모든 ㅑma가 것이 ㅑma가 자의적 ㅑma가 해석이 ㅑma가 된다. ㅑma가 그래서 ㅑma가 비평조차 ㅑma가 시나 ㅑma가 소설처럼 ㅑma가 상상력 ㅑma가 넘치는, z9라l 그러나 z9라l 다소 z9라l 공감되지 z9라l 않을 z9라l z9라l 있는, 가파v사 과도하거나 가파v사 또는 가파v사 나약한 가파v사 해석이 가파v사 돼버린다.

작가의 가파v사 이전 가파v사 작업에서는 가파v사 자연과 가파v사 인공물을 가파v사 대치하여 가파v사 문명에 가파v사 저항하는 가파v사 것들, 하pss 예를 하pss 들어 하pss 근친상간의 하pss 텍스트를 하pss 가져오거나, 다카ㅓw 이중적 다카ㅓw 자아분열을 다카ㅓw 암시하는 다카ㅓw 쌍둥이 다카ㅓw 서사, u우가n 인간의 u우가n 손이 u우가n 닿지 u우가n 않는 u우가n 열대림 u우가n 등을 u우가n 등장시켜 u우가n 기이하지만 u우가n 독특한 u우가n 긴장감을 u우가n 주는 u우가n 풍경을 u우가n 시각화 u우가n 해왔다. u우가n 살아있는/시든/시들어가는/ u우가n 꽃과 u우가n 나무 u우가n 같은 u우가n 식물들과 u우가n 함께 u우가n 철조망과 u우가n 스테인리스스틸 u우가n 같은 u우가n 차갑고 u우가n 금속성의 u우가n 인공물을 u우가n 대치한다. u우가n 특히 u우가n u우가n 시들어버릴 u우가n 장미꽃더미들과 u우가n 보라색 u우가n 조명은 u우가n 화려하지만 u우가n 미심쩍고 u우가n 우아하지만 u우가n 슬플 u우가n u우가n 있는 u우가n 여지를 u우가n 주는데, 히사ㅓ가 이러한 히사ㅓ가 신체성 히사ㅓ가 강한 히사ㅓ가 오브제들은 ‘살아있는 히사ㅓ가 배우’와도 히사ㅓ가 같이 히사ㅓ가 관객을 히사ㅓ가 몰입시켜왔다. 히사ㅓ가 이번 히사ㅓ가 전시에서도 히사ㅓ가 작가의 히사ㅓ가 텍스트 히사ㅓ가 작업이 히사ㅓ가 무대와 히사ㅓ가 함께 히사ㅓ가 올려지지만, 아ㅈ히타 이전과는 아ㅈ히타 다르게, – 0jㅓp 아니 0jㅓp 초기작업 [유토피아/ 0jㅓp 시각정원(2014)]으로 0jㅓp 돌아간듯한 – 0jㅓp 과감하고 0jㅓp 규모 0jㅓp 있는 0jㅓp 오브제가 0jㅓp 등장한다. 0jㅓp 또한 0jㅓp 정원 [시각정원(2005-2014)]에서 0jㅓp 공원으로 0jㅓp 전이된 0jㅓp 배경에 0jㅓp 살아있는 0jㅓp 나무가 0jㅓp 아닌 0jㅓp 0jㅓp 타버린 0jㅓp 나무더미 0jㅓp 즉, 사타9사 폐허의 사타9사 풍경이 사타9사 무대 사타9사 위에 사타9사 올려졌다. 사타9사 작가는 사타9사 이번 사타9사 전시에서 사타9사 유토피아/시각정원이 사타9사 아닌 사타9사 디스토피아/폐허가 사타9사 사타9사 공원을 사타9사 제안하고 사타9사 있는지 사타9사 모르겠다. 사타9사 이번 사타9사 무대는 사타9사 일상을 사타9사 잃어버린 사타9사 폐허 사타9사 같은 사타9사 삶의 사타9사 풍경이자 사타9사 억압으로 사타9사 내재화된 사타9사 분노가 사타9사 휩쓸고 사타9사 지나간 사타9사 잔재이다.

“이번 사타9사 전시에 사타9사 보일 사타9사 하얗고 사타9사 검은 사타9사 풍경은 사타9사 무엇인가를 사타9사 사타9사 대놓고, vㅑ갸9 혹은 vㅑ갸9 까발려서 vㅑ갸9 설명하지는 vㅑ갸9 않는다. vㅑ갸9 그저 vㅑ갸9 탐미적으로 vㅑ갸9 예쁘기도, nㄴeq 슬프기도, 8ㅓxv 정제되기도 8ㅓxv 한 “풍경, lㅈp라 장면, jq3기 무대”이다. jq3기 하지만 jq3기 jq3기 안에는 jq3기 우리가 jq3기 생각하지 jq3기 못했던 jq3기 그저 jq3기 가리워지고 jq3기 숨겨지고, a사ce 지워진 a사ce 위의 a사ce 글과 a사ce 같은, p사타d 들어야지만 p사타d 들리는 p사타d 소소한 p사타d 경험과 p사타d 이야기들이 p사타d 존재한다. p사타d 그런 p사타d 풍경을 p사타d 만들어보고 p사타d 싶었다. p사타d 천천히 p사타d 앉아서 p사타d 귀를 p사타d 기울여야만 p사타d 하는 p사타d 풍경 p사타d 말이다… p사타d 어쩔 p사타d p사타d 없는 p사타d 상황에 p사타d 맞닿으면 p사타d 사람은 p사타d 극단적인 p사타d 선택을 p사타d 하기 p사타d 마련이다. p사타d 마치 p사타d 코너에 p사타d 몰린 p사타d p사타d 마냥, ewㄴㄴ 사람들은 ewㄴㄴ 내면에서 ewㄴㄴ 슬그머니 ewㄴㄴ ewㄴㄴ 망가뜨리고 ewㄴㄴ 싶은 ewㄴㄴ 욕구가 ewㄴㄴ 치밀어 ewㄴㄴ 오른다.”(작가 ewㄴㄴ 노트에서) ewㄴㄴ 작가의 ewㄴㄴ 복합적인 ewㄴㄴ 감정은 ewㄴㄴ 응축되고 ewㄴㄴ 압축된 ewㄴㄴ 조각적인 ewㄴㄴ 작업으로 ewㄴㄴ 드러난다. ewㄴㄴ 작가는 ewㄴㄴ 풍경도 ewㄴㄴ 무대도 ewㄴㄴ 건축도 ewㄴㄴ 아닌 ewㄴㄴ 조각적인 ewㄴㄴ 것에 ewㄴㄴ 대한, 25r7 조각으로의 25r7 회귀라기보다 25r7 모든 25r7 경계를 25r7 모호하게 25r7 만드는 “하나의 25r7 풍경”을 25r7 시도하고 25r7 있는지 25r7 모른다.

최근 25r7 우리는 25r7 전대미문의 25r7 글로벌 25r7 팬데믹 25r7 상황에 25r7 노출되었다. 25r7 자기를 25r7 지키는 25r7 최고의 25r7 방법이 25r7 자가격리가 25r7 25r7 지금, 2ㅐ4차 집도, 카7히t 가족도, qb라ㅑ 마을도, b거ax 국가도 b거ax b거ax 이상 b거ax 나의 b거ax 보호막이 b거ax 아닌 b거ax 위태로운 b거ax 나날이다. b거ax 젊은 b거ax 세대, 1ㅓkk 소외된 1ㅓkk 타자의 1ㅓkk 박탈감과 1ㅓkk 무기력증은 1ㅓkk 말할 1ㅓkk 것도 1ㅓkk 없이 1ㅓkk 코로나블루라는 1ㅓkk 증세가 1ㅓkk 우리 1ㅓkk 삶을 1ㅓkk 덮쳤다. 1ㅓkk 일상의 1ㅓkk 파괴는 1ㅓkk 편협하고 1ㅓkk 배타적이며 1ㅓkk 때론 1ㅓkk 비정상적인 1ㅓkk 사건들을 1ㅓkk 양상하고 1ㅓkk 있다. “지난 1ㅓkk 1ㅓkk 달을 1ㅓkk 뉴스만 1ㅓkk 보며 1ㅓkk 1ㅓkk 1ㅓkk 같다. 1ㅓkk 어쩔 1ㅓkk 1ㅓkk 없이, jㅓ걷d 다가온 jㅓ걷d 일들이라 jㅓ걷d 해도 jㅓ걷d 버텨내기란, 거아파카 살아내기란 거아파카 누구에게나 거아파카 녹록하지 거아파카 않은 거아파카 법이다. 거아파카 신기한 거아파카 일은 거아파카 난관은 거아파카 사람을 거아파카 공포에 거아파카 몰아넣고, 거44g 거44g 공포란 거44g 사람의 거44g 거44g 낯, 거fwㅐ 또는 거fwㅐ 동물성을 거fwㅐ 여과 거fwㅐ 없이 거fwㅐ 보여주기 거fwㅐ 마련이라는 거fwㅐ 것이다. 거fwㅐ 사람의 거fwㅐ 얼굴이어도 거fwㅐ 거fwㅐ 안엔 거fwㅐ 어떤 거fwㅐ 것들이 거fwㅐ 도사리는지 거fwㅐ 우리는 거fwㅐ 모른다. 거fwㅐ 사람 거fwㅐ 속에는 거fwㅐ 사자가, 하mx9 뱀이, 갸ico 있을지도 갸ico 모른다.”(작가 갸ico 노트에서) 갸ico 공포가 갸ico 만들어내는 갸ico 균열들은 갸ico 서서히 갸ico 커지면서 갸ico 우리의 갸ico 삶을 갸ico 잠식한다. 갸ico 김시하가 갸ico 제안하는 “하나의 갸ico 풍경”은 갸ico 동시대인들이 갸ico 느끼는 갸ico 디스토피안들의 갸ico 정원으로서 갸ico 보편성을 갸ico 획득하는 갸ico 소통의 갸ico 공원인 갸ico 것이다.


참여작가: 갸ico 김시하

출처: 갸ico 씨알콜렉티브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김시하

현재 진행중인 전시

시선의 4pmf 감정 Beyond Your Gaze

Oct. 15, 2020 ~ Dec. 5, 2020

뀨르와 9나ㅐ아 타르 9나ㅐ아 개인전 : RRRRRRRRRRRR..

Nov. 13, 2020 ~ Dec. 10, 2020

전태일50주기 mk다e 특별기획 mk다e 현대미술전 : mk다e 따로-같이

Sept. 24, 2020 ~ March 21,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