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개인전 : Timeless 타임리스

갤러리현대

2021년 2월 19일 ~ 2021년 3월 28일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생물학적 흐름으로 인한 돌연변이 현상으로 시간을 감지할 뿐이다. 나는 산을 그리고, 자르고, 태워 조수(潮水)를 가두고 붙인다. 산의 흔적은 영겁의 해류의 소리가 된다. 먹의 띠가 만든 수평선은 시간을 초월하게 한다." - 김민정

갤러리현대는 김민정의 개인전 《Timeless(타임리스)》를 개최한다. 김민정은 지난 30년 동안 동아시아 회화 예술의 유산인 지필묵(紙筆墨)의 전통을 서구 추상미술의 조형 어법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을 발표해 왔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작가는 2018년 영국 런던의 화이트 큐브, 2019년 독일 노이스의 랑겐 파운데이션, 2020년 미국 뉴욕의 힐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연이어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세계적 출판사 파이돈에서 최근 발간한 동시대 미술서 『비타민 D3: 오늘의 동시대 드로잉 베스트(Vitamin D3: Today's Best in Contemporary Drawing)』의 대표 작가로 선정되는 등 국제적 명성을 쌓는 중이다.

2017년 《종이, 먹, 그을음: 그 후》전 이후 갤러리현대에서 4년 만에 열리는 두 번째 개인전 《Timeless(타임리스)》는 김민정의 대표 연작 <Mountain>, <The Street>, <Sculpture>, <Story>, <Timeless>를 비롯해, 새로운 연작 <The Water>와 <Couple> 등 총 30여 점의 최근작을 공개한다. ‘끝이 없는’, ‘영원한’, ‘변하지 않는’ 등의 의미를 지닌 전시 제목 《Timeless(타임리스)》는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연작과 동명의 타이틀이자,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는 한지의 강인함과 아름다움, 마치 수행을 하듯 호흡을 가다듬어 한지를 불로 태우는 행위, 그 조각을 섬세하게 배열하는 반복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수작업 등 김민정의 작품 세계를 복합적으로 아우른다. 나아가 윤회, 음(陰)과 양(陽), 비움과 채움 등의 동양 철학적 사유와 깨달음을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시각화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잘 드러내는 단어이다.

김민정 화업의 출발점에는 늘 한지(종이)가 자리한다. 한지는 대상이 그려지는 바탕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민정에게 한지는 색색의 물감이자 회화의 대상 그 자체이며, 명상과 수행을 위한 무대가 된다. 또한 한지는 종교와 역사를 기록하는 장소이자,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며 영원에 이르는 수단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인쇄소에서 종이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어린 시절부터 김민정은 서예와 수채화를 공부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고,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당시 한국의 많은 젊은 작가가 미국 뉴욕이나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것과 달리, 김민정은 르네상스 미술을 향한 동경과 호기심을 안고 1991년 이탈리아로 떠났고, 밀라노 브레라국립미술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서양 미술의 혁신적 조형 문법이 탄생한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피부와 같은 재료인 한지로 되돌아갔다. 한지는 동양인 김민정의 문화적 정체성과 그의 예술적 정신의 본류였다. 그는 한지를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품으로 인식하고, 이를 이용한 작업을 제작하면서도 그 고유의 성질을 돋보이도록 했다. 김민정은 1990년대 먹과 수채 물감의 얼룩과 번짐 효과를 극대화한 일련의 수묵/채색 추상 작품을 발표했고, 1990년대 후반 작품의 일부를 불로 태우며 동아시아 회화 예술의 관례를 폐기하는 과감한 변신을 준비했다.

2000년대 들어 작가는 그림의 지지체인 한지를 매체로 실험하는 콜라주 작업을 본격화한다. 동양화의 기초가 되는 선(線)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한지를 태우기 시작한 작가는 종이와 불이 ‘협업’해 만든 자연의 또 다른 선에 매료되었다. 인간의 발명품 중 가장 연약한 종이를 촛불이나 향불로 태워 없애는 파괴적 행위를 행하며 자연의 힘과 절제의 감각을 깨달았다. 작가는 이를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하며 자신만의 끈끈하고 진진한 맛이 나는 태움의 먹 선을 창조했다. 김민정은 한지를 태우는 순간의 행위는 종이가 썩어서 사라지는 몇 천 년의 시간을 함축한다고 설명한다. 한지가 닥나무나 뽕나무 껍질로 만드는 것처럼 먹 또한 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아교로 고정해 만든다는 점에서, 그가 구사하는 모든 재료는 자연에서 출발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재료와 주제, 내용과 형식에 있어 반복과 순환의 개념은 김민정 작품 세계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김민정은 태운 한지를 재료로 장인처럼 세심한 수공과 집중의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작가는 작두로 절단하거나 불로 태워 만든 원형과 띠 형상의 색색의 한지 조각을 한지에 배치하고 색조, 형태, 질감 등을 무수히 변주하며 화면에 부유하는 공간감과 팽팽한 미적 긴장감을 만들어간다. 얇은 한지가 촘촘하게 맞물려 형성된 입체감은 잡념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작가의 손과 그 촉각적 감각을 환기시킨다. 혼돈에서 질서로, 정지에서 움직임으로, 충동에서 절제를 향해가는 수행적인 여정이, 곧 제작 과정이다. 작가는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영적인 상태에 이르는 길’과 비유한다. “저 자신이 매우 자유로우면서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영적인 상태에 있기를 바라요. 제게 반복이란 자신을 잃는 것이고, 자신의 내면으로 깊게 들어가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참선이나 명상을 실천하는 방법이죠. 몇시간이고 반복하면 자신을 둘러싼 현실마저 사라져요. 이 과정을 통해 더욱 맑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런 느낌은 중독성이 있어요.” 명상과 같은 노동의 결과로 탄생한 개별 작품은 구체적 대상을 보여 주지 않지만, 보는 이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안개 낀 산봉우리, 들에 화려하게 핀 꽃, 비 오는 길거리의 우산 등을 상상하게 하는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다.

갤러리현대의 1층 전시장에는 ‘한지’라는 재료가 지닌 무한의 시간성을 영감의 원천이 되는 자연의 형태나 심상과 연결하는 작가의 방법론을 엿볼 수 있다. 한지 콜라주가 활짝 핀 꽃의 형상처럼 보이는 <Pieno di Vuoto> 연작, 물 혹은 물결의 소리를 작품화한 <Timeless>와 <The Water> 연작,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나오며 화면을 빼곡하게 채운 단색의 한지 조각의 치밀한 층위가 압도적인 <Nautilus>를 선보인다. 2층 전시장에는 <Timeless>와 함께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The Street>, <Mountain>, <Story> 연작을 선보인다. 세 연작은 영감을 준 구체적인 장면이나 대상이 추상적 패턴으로 전환되는 김민정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우연과 계획, 충동과 질서, 잘린 것과 남은 것 등의 대립 개념과 상충하는 에너지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The Room>, <Corner>, <Sculpture>, <Couple>, <Order and Impulse> 등의 작품을 소개한다.

참여작가: 김민정 MINJUNG KIM

출처: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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