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희 개인전 : 씨가 말랐대 Dohee Kim : Signs of Extinction

씨알콜렉티브

2020년 8월 13일 ~ 2020년 9월 23일

김도희 작업은 감정에 충실하다. 아니 그보다는 작업을 위해 최대치의 감정을 몰입시켜 끝까지 끌어올린다고 함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에게 일종의 ‘성(性)’을 내거나 ‘노(怒)’의 감정은 작업의 추동력으로서, 복잡하거나 돌려 말하는 간접적인 방식은 취하지 않는다. 지극히 여성성에 천착하며 상당히 비여성적인 방법으로 표출한다. 여성의 전유물로 오인 받아왔던 짜증이나 히스테리와는 다른 “욱”하는 분노의 발현은 어찌 보면 상당히 남성적인 기질의 것으로 읽히는데, 결과론적 반응은 가장 여성적인 신체적 현상으로 작동한다. 인과관계가 양성을 교차한다.

씨가 말라서 여성의 그것이 무정란으로 화했는지, 무정란으로 배설해버려서 씨가 필요 없어졌는지 따질 수 없다. 다만 “씨가 말랐대, Signs of Extinction”라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제목을 통해 작가는 양성이 대척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지점이 양성에게 상생의 에너지가 아님을 제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작가는 “씨가 마르는” 특수한 징후를 지극히 자연(自然)적인 것으로 상정한다. “생명을 낳고 존엄을 지키고 양육할 자격이 안 되는 세상에 전대미문의 징후가 벌어진다. 임산부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뱃속 아기가 스스로 사라져버리는 현상처럼 여성의 생식 기능이 집단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환멸의 사회에 저항하기이자 동시에 아직 탄생하지 않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몸이 스스로 잉태하기를 거부하는 본능적이고 자연적인 힘이다.” (작가노트에서)

감정은 이성과는 다르게 끊임없이 변하며, 가장 주관적인 것으로서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어왔다. 또한 미술이 아름다움이나 선함, 또는 좋은 것을 추구하거나, 예술의 존재방식 및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미술의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저차원의 저급한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그렇다면 김도희의 노골적이고 직설적 감정언어는 동시대언어로서 어떠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가. 잠깐만 판단을 유보하자.

전통적으로 윤리나 종교에서는 분노, 즉 성질을 죽이지 못하는 것을 일종의 죄의 원인으로 간주하지만, 불의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및 행복권을 포기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불의”를 판단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신의 섭리나 공리 같은 절대 신념은 이제 상대적인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분노하는 최근의 “불의한 상황”에 대해 살펴보자.

“김학의 무죄, N번방 사건 이후 웰컴투 비디오를 거쳐 예술계 Y작가 성폭력 문제와 서울시장의 성폭력 의혹까지 단 두, 세달만해도 약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범죄가 끝없이 드러났다… 근래의 상황에서 분노를 동반한 감정적 요동이 신체적 징후로 드러나고 있음을 느끼게 되어 늘 그래왔듯 몸과 감정의 요동을 엔진 삼아 이번 전시를 추진하게 되었다. 지금 현재 그 어떤 주제보다 다루고 싶은 내용이자 일상을 잠식하는 현실이고 지금이 아니면 머지않아 일상 속으로 가라앉아버려서 동력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방관하고 방조, 동조하는 제도와 국가 등에 대해 여성의 몸은 이중삼중의 폭력을 겪어왔다. 이렇게 누적된 통증이 역치에 도달, 무의식적 반응으로서의 몸의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안전하지 않은 세상, 사람답게 살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에 대한 방어이자 공격 또는 경기驚氣로서 생식기능(몸속의 무정란–난자–와 관련 체액)이 양수가 터져나가듯 한 번에 흘러나가 버리는 집단 유산에 비견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작가노트에서)

김도희는 최근 기존 진행하던 작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신작제작에 몰입했다. 바로 N번방의 손정우의 미국 인도요청을 사법부가 불허한 날이었다. 작가는 불의, 사회적 안전망을 상실한 지금을 방관, 방조하지 않고 행위 하는 방식으로 미술을 접근한다. 최근의 상황을 한계상황으로 규정하고, 절대적 고독 속에서 지극히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진리를 드러내고자한다. 분노가 “행위”로 전환되어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노골화하는 미학적 지점, 그리고 작가를 중심으로 저항하는 약자끼리, 연대하고 행동하는 에너지를 작업으로 전환한다.

18명이 찍은 18개의 극현실적이면서도 그로스gross하며 언캐니uncanny한 사진을 공유하고, 12인의 작가들이 강강술래라는 전통적인 여성의 향유 방법을 취하면서 저항의 의식을 강행한다. 사진 작업인 <씨가 말랐대Ⅰ>는 20대부터 6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예술가들이 함께한 사진작업이다. “격분과 깊은 좌절,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던 여성들이 위와 같은 전시의 취지에 공감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의 스트레스와 우울감, 고통이 불면과 소화불량, 피부발진, 탈모 등 신체적 이상 징후로 드러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자가 사적인 분위기에서 자신의 난자와 관련 체액이 밖으로 쏟아져 소실되는 상황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공통조건에 동의했고 세부 내용과 소재는 자유로웠다. (중략) 사진은 여성의 신체적 차이를 약점이자 도구로 이용하고 대상화하는 사회적 프레임에 대항하기 위해 이를 공격의 도구로 전환 활용하여 존엄을 확인시킨다. 공동의 문제의식과 연대의식이 창작의 기폭인 만큼 함께 상의하고 돕는 작업 과정에서 무기력과 고통을 얼마간 해소하고 나아갈 힘을 얻는 구체적 경험은 거창한 예술의 추상적 가치보다 현실적이라고 할 것이다.” (작가노트에서) 난자, 체액, 소실, 그리고 해소 등의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상상, 그리고 동시에 현실은 비사회적이고 여성적이어서 처절하다.

단채널 영상인 <씨가 말랐대 Ⅱ–강강술래>는 여성들의 고통과 저항의식을 놀이의 흥과 우정으로 승화하는 전통놀이인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하였다. “영상에 붉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 12인의 인물들은 ‘씨가 말랐대Ⅰ’의 작업을 함께 했으니, 이른바 생식 기능을 다 비워낸 몸을 얻은 여성들이다. 12는 완전한 주기이자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여 많은 나라에서는 이 기간 동안 축제를 하기도 한다. 본 영상의 인물들은 장시간 달밤 아래 숨이 턱에 차도록 강강술래를 했다. 각 개인이 영상이 표방하는 심리적 효과를 퍼포먼스 과정에서 체험하는 것이 중요했다. 꼭 마주 잡은 사람들의 손, 출렁이는 머리카락, 나풀거리는 붉은 치맛자락은 이 자체가 우울과 분노를 넘어 타오르는 하나의 불길처럼 생명력이 넘친다. 부감샷으로 보이는 클라이막스 영상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전환된다. 각자가 일상에서 겪은 성폭력을 나열하며 중얼거리는 소리는 약자를 혐오하고 생명을 자본의 도구로 여기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씨가 말랐어.’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세상에 생명을 내놓지 않겠다는 극단적이고 단호한 저주이면서 또 절실한 방어이다. 그날 밤 모였던 우리는 실제로 ‘모든 형태의 성착취의 씨가 말라버려라’ 하는 주문을 외웠다.“ (작가노트에서)

<쌍시옷>은 모니터 위를 리드미컬하게 지나가는 텍스트 설치작업으로, 최근 단 두 달 사이에 미디어를 달구었던 성착취물과 성폭행 관련 뉴스들, 그리고 이에 반응해 SNS에서 사람들이 달았던 댓글을 뽑아서 정리한 것이다. “우리는 엄청난 양의 폭력과 그 소식 앞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그 자극과 고통이 뉴스를 끊어야 할 만큼 역치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거의 매일 국민청원에 심각한 사건들이 올라온다. 나는 몇몇 작가들과 웰컴투 비디오의 주모자 손정우의 미국 인도를 요구하기 위해 법원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50만의 청원을 우습게 무시하듯 거절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무감각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일상으로 돌아가 우리의 존엄을 지켜갈 여유 한 구석을 위해 가슴속 바람빼기를 해 보자. 그리고 서로의 손을 잡자.“ (작가노트에서)

여성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정치적인 것“의 미학,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퍼포먼스 영상작업이 새로운 가치, 제도, 윤리, 보완장치들을 발견하는 창의적 대안이 되느냐는 숙제로 남는다. 작가에게 불편한 현실을 드러내고 향유하는 진정성 있는 방법은 시각적, 행위적, 언어적 충격요법과 함께 다른 작가들과 분노한 감정을 공유, 위로하며 연대하는 것이다. 

오세원(씨알콜렉티브 디렉터)

출처: 씨알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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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김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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