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후 개인전 : 유령을 먹어치운 신체

복합문화공간에무

2019년 8월 27일 ~ 2019년 11월 1일

(미술의 임상실험실 갤러리에무 기획초대전) 김길후展을 열며

작년부터 한 가지 생각이 불쑥 떠올라 머릿속에 머물고 있다.

- 우리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야? 아니 너나 나나 잘 살고 있냐는 말이지.
- 그래? 그럼 뭐가 잘 사는 건데? …또 뭐가 필요하다는 거야? 
- 아니 그냥… ㅠㅠ

2010년 11월 복합문화공간에무가 오픈한 이래로 거의 10년을 향해 가고 있다. 사람의 인생으로 따지면 이제 막 소년에 접어 든 나이에 불과하지만 그 동안 수많은 전시를 거치며 이 시대 가난한 예술가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복합문화공간에무는 예술적 권위를 내세운 엄숙한 작품보다는 웃음과 기지가 넘치는 작품을 중시한다. 허영의 시장이 된 예술과 사교장화 된 표현공간에 좌절, 분노, 항의하는 예술가들에게 이 공간은 열려 있다."
처음 이 공간이 개관되었을 때 말이며, 지금도 하나의 신념으로 간직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말이다. 어제와 더불어 함께하는 지금, 우리의 시간과 공간 속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누군가 또는 도인이 나타나 "아무것도 없다! 꼭 뭔가 있어야만 하는가?"라는 대답에 마음의 상처를 받을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당장 우리를 존재케 하는 살아있는 에너지를 느끼고 있지 못함이 불안감으로 엄습했다.

에너지, 살게 하는, 당장 먹을 수 있는 밥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걸 체감했다. 물론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 권위로 군림하지 않고, 허영의 시장이 아닌, 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나른한 감상에 멈추지 않는다면 예술은 항상 현재의 불편한 진실을 자극하거나 직시하고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이 공간에서만큼은 말이다.

복합문화공간에무 기획초대전은 공간에 대한 신념에서도 밝힌바 보다 명확히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인간과 시대를 거침없이 말하고, 새로운 세계를 주장하는 작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려는 것이다. 따라서 기획초대전에 초대되는 작품들은 구작이 아니라 늘 신작이어야 한다. 정착화된 작품이 아니라 동시대에 생생하게 반응하며 움직이는 작품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길후는 우리가 찾아 만난 첫 번째 작가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우연히 만났다.)
그와의 만남의 과정을 여기에 서술하지는 않겠지만 나중 함께 담소를 나누는 자리가 생긴다면 이상하고 야릇한 에피소드를 소개할 것들이 많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좀 당황스럽고 황당한 이야기들이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 다짜고짜 그가 쏟아내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지나친 감상주의에 빠진 시대를 비판합니다. … 한줌의 도덕! 그것으로 통제되는 사회! 도덕은 단지 정해놓은 것들의 질서일 뿐이죠. 그렇다면 정해져 있지 않는 세계는 어찌할 것인가? … 예술은 정해놓은 질서를 넘어 서는 것입니다. 그 다음세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회화의 본질. 재현의 본질. 그림. 그리움의 본질. 본질은 본향을 연상시킵니다. 본향은 떠나온 과거의 고향과도 같은 곳인가? 미래로 다가가는 미지의 세계인가? 본질, 본향에 다가서기 위해 계획된 것이 결국에 망쳐버려져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의 말이 두서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뭔가 감각적으로 비수를 꽂는 것 같은 말들에 주목해 보기로 했다. 마지막 문장이 매력적으로 들렸다. “결국에 망쳐버려져야 한다는 생각” 그의 어법처럼 나도 그의 말을 받아 다음과 같이 적어본다.

"결국에 망쳐버려져야 한다!"
재현을 위해 생각하는 것, 마음에 담에 두는 것, 계획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그 당연한 노력만이 본향으로 들어가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우리가 수십 만 번 시도한 바로는 그 본향의 생생함을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결국 재현된 것에서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보태진 감상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필요충분한 조건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예기치 않게. 던지듯. 잠자듯. 홀린 듯. 그려진 그리움의 본질이 내 눈앞에 다가 서 있을 때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물론 그에게만 한정되는 일이지만. 그러나 작가 김길후는 모든 계획된 것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마치 어떤 법칙1)처럼 계획에 준한 결과물은 감상적 자기 연민 그 이상을 말하지 못하며,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시간이 지나면 곧 무너질 매우 허약한 것들이라고.
일부러 망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계획되지 않은, 우연히, 무심코, 나도 모르게 한 질서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그에게서 드러나는 형상은 마치 떠도는 유령처럼 보일지 모른다. 어떤 구체적 형상을 먹어치운 또 다른 신체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 형태는 기표와 기의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 어떤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그렸지만, 인간이 아닌, 그렇지만 인간의 본질과도 같은, 무질서 속에서 최소한의 질서를 발견하고 싶은 욕망이 느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질서를 이탈하려는 화가의 몸짓이 느껴지는, 그는 질서와 무질서,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서 마치 줄타기를 하는듯하다.

"탱탱해야 한다!"
그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다. 마치 줄타기를 하는 사람(화가)의 긴장된 상태를 말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팽팽히 당겨진 상태의 줄(작품)을 말하려는 것이지 확실치는 않지만 이 말에 덧붙여 빼먹지 않고 하는 말은 "자신의 관심은 휴머니즘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저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현생의 일처럼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홀린 듯 그의 말을 듣고 나면 그는 다음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그림을 봐주길 기대하는 것처럼 들린다.

……따라서 나의 작품은 감상자의 경험에 준한 감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자체로 현재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암시 같은 것이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는 각자가 곧 만나게 될 미지의 세계에 두려움 없이 직면해 주길 바랍니다. 과거일수도, 현재일수도, 미래일수도,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는 양자세계의 불확정적인 상태와 같은 진짜 현재에 집중해 주길 바랍니다. 그 진짜 현재 상태를 그린 것이 저의 그림이며, 당신 역시 한 줌의 도덕, 정해진 세계에 갇혀서 나른한 감상에 빠져들지 마시길 바라며…… 

작가 김길후의 작품의 탱탱함이란 예컨대 엔트로피 지수가 질서의 경계점에서 항상 출렁거리는 상태를 표현한 말 같다. 그 상태가 새로운 변화의 변곡점이며, 그 상황이 진짜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매 순간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려 하며,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예기치 않게. 던지듯. 잠자듯. 홀린 듯. 번쩍 들어온 에너지 덩어리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데 잠시의 여유도 부리지 않는다. (참고로 그는 꼭 필요한 만남 이외는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만 그린다. 마치  증권회사 펀드 매니저가 쉬는 날 빼고 주식현황판에 눈을 떼지 않고 있듯.)

자, 이쯤해서 그와 그의 그림에 대한 나의 소견을 멈추고, 그의 작품을 직접 대면해 보시는 것이 최선일 듯싶다. 그의 느낌처럼 당신도 느낄 수 있는지…
덧붙여 앞으로 복합문화공간에무 기획초대전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그동안 거리를 두고 산책하며 보는 작품들 보다는 당신의 감정을 흔들며 세상에 직면하는 작품들을 만나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해보겠다. 

김영철 (기획초대전 큐레이터, 갤러리에무 부관장)

출처: 복합문화공간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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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김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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