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기획 2015 기억공작소 권순철 : 얼굴 Face

봉산문화회관

2015년 4월 24일 ~ 2015년 6월 21일

봉산문화회관은 예술작품이 주인공이 되고 관객이 그 작품과 호흡할 수 있는 공간, 나아가 예술창조를 응원하고 도심 재창조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발견하려는 공공예술지원센터를 지향하는 운영방향에 맞춰 끊임없는 예술실험으로 주목을 받아온 작가를 초청하고, 그 작가의 태도가 담긴 전시를 선보이고자 한다. 이번 권순철 개인전은 이러한 비전에 부합하고, 국제무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이 있음에도 그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대구에 소개의 기회가 적었던 문제에 주목하여, 도심에 위치한 공공 미술전시실로서 이러한 작가의 새로운 플랫폼 역할을 하고자 기획되었다.
12년 만에 대구에서 갖는 권순철의 개인전 “얼굴 Face”는 지난 40여 년간 작가가 발전시켜 온 관심사는 물론 기존의 회화적 특성에 기반을 둔 드로잉 작업 세계의 다른 면모를 심도 있게 살펴본다. 특히 ‘얼굴’, ‘산’, ‘넋’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역사와 사람, 시간의 실체와 실존, 한 나라의 정신과 흔적을 인식해 가는 권순철 작업의 특유한 시각적 언어와 형식적 특이성을 엿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기억 공작소(記憶工作所, A spot of recollections)’는 예술을 통하여 무수한 ‘생’의 사건이 축적된 현재, 이곳의 가치를 기억하고 공작하려는 실천의 자리이며, 상상과 그 재생을 통하여 예술의 미래 정서를 주목하려는 미술가의 시도이다. 예술이 한 인간의 삶과 동화되어 생명의 생생한 가치를 노래하는 것이라면, 예술은 또한 그 기억의 보고(寶庫)이며 지속적으로 그 기억을 새롭게 공작하는 실천이기도하다. 그런 이유들로 인하여 예술은 자신이 탄생한 환경의 오래된 가치를 근원적으로 기억하게 되고 그 재생과 공작의 실천을 통하여 환경으로서 다시 기억하게 한다. 예술은 생의 사건을 가치 있게 살려내려는 기억공작소이다.

그러니 멈추어 돌이켜보고 기억하라! 둘러앉아 함께 생각을 모아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금껏 우리 자신들에 대해 가졌던 전망 중에서 가장 거창한 전망의 가장 독특한 해석과 그들의 다른 기억을 공작하라! 
또 다른 기억, 낯선 풍경을….

그러고 나서 그런 전망을 단단하게 붙잡아 줄 가치와 개념들을 잡아서 그것들을 미래의 기억을 위해 제시할 것이다. 기억공작소는 창조와 환경적 특수성의 발견, 그리고 그것의 소통, 미래가 곧 현재로 바뀌고 다시 기억으로 남을 다른 역사를 공작한다.

「33인의 얼굴」
권순철의 대표 작품에 대해 보통, 어두운 바탕에 다양한 색상의 물감이 두텁게 쌓여 만들어진 큰 얼굴을 마주할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이번에 전시되는 얼굴들은 조금 다른 면모의 공간적 긴장감과 다소 활달한 붓질의 생경한 두려움이 어려 있어 좀 더 넓은 작가의 스펙트럼을 알 수 있도록 해준다. 3개 벽면 가득히 채워진 한지 드로잉 속, 얼굴 이미지는 주인공 각자가 짊어져온 생존의 시간과 작가의 기억 성찰 이후의 윤리성, 또 초월적 숭고미로 인도될 수 있는 작가의 오래된 아이콘의 또 다른 버전이다.

지금까지 발표해온 권순철의 주요 작업 이미지 스틸을 보여주는 디지털 모니터를 지나서 마주하게 되는 130×162㎝ 크기의 두터운 한지 드로잉 33점은 높이 5m 흰색 전시 공간에 33인의 개별 얼굴들이 서로 의지하며 하나의 큰 바탕을 형성하는 강인하고 숭고한 에너지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 울림의 체험으로 열리는 새로운 장소는 작가의 ‘마음’과 신체 ‘행위’를 포함하여 서로 다른 시간 층위의 재질감들을 기록하고 지나온 기억의 구획들을 펼쳐냄으로써 화면의 바탕, 신체 행위, 작가의 숨결 등이 일체화된 몰입 환경으로 작용한다. 아마도 이 몰입 환경은 ‘한국성’ 탐구에 관한 작가의 직관이 조형해내는 ‘얼굴’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윤수는 권순철이 그려온 ‘얼굴’에 대하여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한국의 노인네들 얼굴이고 그 표정이다. 늙고 주름진 얼굴, 순박한 혹은 근엄한 얼굴, 기나긴 인고의 노동이 새겨진 얼굴, 수심에 지친 표정 등, 우리들이 어릴 때부터 보아온 이 땅의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의 진지함과 엄숙함이 있다.”라고 했다. 그 얼굴들은 살아있는 약자로서 거친 세상을 힘겹게 생존하는 보통 인간의 존재감과 더불어 동의할 수 없는 뭔가에 저항하면서도 처연함을 엿보이는 인간 관계적 윤리성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것은 숭고미라는 초월적 차원으로 열려있기도 하다.

「신체 행위, 1919로부터」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이 서민의 얼굴을 스케치하고, 캔버스 바탕에 물감으로 두텁게 그리는 권순철의 지속적 행위에서 작가의 태도(態度, attitude)를 짐작할 수 있는데, 태도로서 이 신체 행위는 작가 내면과 외부 세계가 관계하는 소통의 매개이며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체(要諦)로서 주목된다. 즉, 권순철의 태도는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생존의 기록으로서 지속되는 신체 행위에 핵심이 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큰 변화 없이 일정한 결과 흔적을 남기게 되고, 심지어 그가 프랑스에서 활동하게 되는 1988년 이후에도 한국에서 그렸던 그림과 비슷한 한국인의 얼굴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1919년 3월1일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33인의 ‘생존’ 울림을 마음에 두고, 그 바탕에 1970~80년대 작가가 거리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애잔하고 힘겨운 일상을 견뎌낸 서민들의 ‘생존’ 울림으로 겹쳐 기록하는 자신의 신체 행위 흔적들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 드로잉 공간과 마주보는 벽면에는 검은색 바탕 위에 불편하게 무릎을 꿇은 채로 가슴을 위로 들어 올리며 허리를 세운 자세의 인체 그림을 소개한다. 하늘로 향한 영혼을 탐구하는 작가의 신체 행위를 기록한 것일까? 두텁게 바른 다양한 물감 색상과 재질감이 돋보이는 이 회화는 33점의 ‘얼굴’이 지닌 생경한 두려움에 대응하듯 평안하고 조용한 무게감을 만들며, ‘얼굴’이 곧 ‘영혼’, ‘넋’일 수 있는 동일성을 암시한다. 짐작컨대 마주보는 이 두 작업의 관계는 우리 개인의 삶과 지난 역사, 동시대 시간성에 대한 질문의 기록과 축적 그리고 현실 존재의 인간과 영혼의 관계 기억에 대한 환기를 독려하는 것이다. 이제껏, 작가의 관심사가 발전시켜 온 ‘얼굴’, ‘산’, ‘넋’ 작업들은 한국전쟁(1950-53)의 기억과 그 이전 일제 강점기(1910-45)의 기억을 통해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파고든 비애의 한(恨)을 호출하는 신체 행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얼굴’과 ‘넋’은 작가의 다른 작업과 마찬가지로 본래의 ‘생존’을 기억하는 담담한 미술 ‘태도’이며, 너무나 익숙해진 관계에 대응하는 또 다른 ‘낯선 기억’으로서 우리의 태도를 환기시키고 있다. /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정종구




출처 : 봉산문화회관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권순철

현재 진행중인 전시

윤혜정 개인전: 물이 기억하는 곳 Where Water Remembers
윤혜정 개인전: 물이 기억하는 곳 Where Water Remembers

2025년 12월 12일 ~ 2025년 12월 30일

유동 근대 Liquid Modernity
유동 근대 Liquid Modernity

2025년 11월 22일 ~ 2026년 1월 10일

밤 나들이 Into the Night
밤 나들이 Into the Night

2025년 12월 5일 ~ 2025년 1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