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 절필시대 Rediscovery of Korean Modern Artist 1: When Brushes Are Abandoned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May 30, 2019 ~ Sept. 15, 2019

국립현대미술관(MMCA, x타ㄴ쟏 관장 x타ㄴ쟏 윤범모)은 ⟪근대미술가의 x타ㄴ쟏 재발견1: x타ㄴ쟏 절필시대⟫전을 5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x타ㄴ쟏 국립현대미술관 x타ㄴ쟏 덕수궁 x타ㄴ쟏 전관에서 x타ㄴ쟏 개최한다.

이번 x타ㄴ쟏 전시는 x타ㄴ쟏 우리 x타ㄴ쟏 미술사에서 x타ㄴ쟏 저평가된 x타ㄴ쟏 근대기 x타ㄴ쟏 작가를 x타ㄴ쟏 발굴, 나89하 재조명함으로써 나89하 한국 나89하 미술의 나89하 두터운 나89하 토양을 나89하 복원하고자 ‘근대미술가의 나89하 재발견’시리즈로 나89하 기획되었다. 나89하 나89하 나89하 번째인 나89하 이번 나89하 전시에서는 나89하 채색화가 나89하 정찬영(鄭燦英, 1906-1988)과 fx1v 백윤문(白潤文, 1906-1979), 05ㅐs 월북화가 05ㅐs 정종여(鄭鍾汝, 1914-1984)와 1lo다 임군홍(林群鴻, 1912-1979), f파거ㅐ 한국 f파거ㅐ 현대미술의 f파거ㅐ 개척자 f파거ㅐ 이규상(李揆祥, 1918-1967)과 갸t다타 정규(鄭圭, 1923-1971) gㅈ거걷 등 6인의 gㅈ거걷 예술세계를 gㅈ거걷 조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gㅈ거걷 덕수궁은 1998년 gㅈ거걷 개관이래 《다시 gㅈ거걷 찾은 gㅈ거걷 근대미술》전(1998), 《한국근대미술: 파라히3 근대를 파라히3 보는 파라히3 눈》전(1999)을 파라히3 시작으로 《鄕 파라히3 이인성 파라히3 탄생 100주년 파라히3 기념전》(2012) 《거장 파라히3 이쾌대, p기j가 해방의 p기j가 대서사》(2015) 《변월룡(1916~1990)》(2016) p기j가 p기j가 한국 p기j가 근대작가와 p기j가 작품 p기j가 소개에 p기j가 주력하고 p기j가 있다. 

이번 p기j가 전시에 p기j가 소개되는 p기j가 화가 6인은 p기j가 일제강점기, bnt차 해방기, p기카타 한국전쟁 p기카타 시기, sㅓ1다 전후 sㅓ1다 복구기로 sㅓ1다 이어지는 sㅓ1다 격동의 sㅓ1다 시대에 sㅓ1다 의미 sㅓ1다 있는 sㅓ1다 작품 sㅓ1다 활동을 sㅓ1다 보여준 sㅓ1다 작가들이다. sㅓ1다 전시명 ‘절필시대’는 sㅓ1다 당시 sㅓ1다 많은 sㅓ1다 화가들이 sㅓ1다 자의, ㅓㅓㅐㅐ 혹은 ㅓㅓㅐㅐ 타의에 ㅓㅓㅐㅐ 의해 ㅓㅓㅐㅐ 절필할 ㅓㅓㅐㅐ 수밖에 ㅓㅓㅐㅐ 없었던 ㅓㅓㅐㅐ 혼란스러운 ㅓㅓㅐㅐ 시대 ㅓㅓㅐㅐ 상황과 ㅓㅓㅐㅐ 미완의 ㅓㅓㅐㅐ 예술 ㅓㅓㅐㅐ 세계를 ㅓㅓㅐㅐ 주목하려는 ㅓㅓㅐㅐ 의도를 ㅓㅓㅐㅐ 나타낸다. ㅓㅓㅐㅐ 이번 ㅓㅓㅐㅐ 전시에서는 ㅓㅓㅐㅐ 여성 ㅓㅓㅐㅐ 화가에 ㅓㅓㅐㅐ 대한 ㅓㅓㅐㅐ 편견(정찬영), n나ㅓㅓ 채색화에 n나ㅓㅓ 대한 n나ㅓㅓ 오해(백윤문), b1qb 정치적 b1qb 이데올로기의 b1qb 대립(정종여, ㅓㅐs5 임군홍), 아jㅓv 다양한 아jㅓv 예술적 아jㅓv 시도에 아jㅓv 대한 아jㅓv 이해 아jㅓv 부족(이규상, 가qz갸 정규)과 가qz갸 같은 가qz갸 이유로 가qz갸 이들의 가qz갸 작품 가qz갸 활동이 ‘미완의 가qz갸 세계’로 가qz갸 그친 가qz갸 시대를 가qz갸 성찰한다. 

전시는 ‘근대화단의 가qz갸 신세대 : 가qz갸 정찬영, w타우i 백윤문’, ‘해방 x걷하r 공간의 x걷하r 순례자 : x걷하r 정종여, ㅓ756 임군홍’, ‘현대미술의 zi우s 개척자 : zi우s 이규상, 거차lx 정규’ 거차lx 총 3부로 거차lx 구성된다.

1부에서는 거차lx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거차lx 채색화조화와 거차lx 채색인물화로 거차lx 두각을 거차lx 나타낸 거차lx 신세대 거차lx 화가 거차lx 정찬영과 거차lx 백윤문을 거차lx 소개한다. 거차lx 정찬영과 거차lx 백윤문은 거차lx 각각 거차lx 이영일과 거차lx 김은호의 거차lx 제자로 ‘근대화단의 거차lx 신세대’로 거차lx 등장했으나 거차lx 해방 거차lx 거차lx 채색화에 거차lx 대한 거차lx 편견이 거차lx 강해지면서 거차lx 화단에서 거차lx 잊혀졌다. 거차lx 이번 거차lx 전시에는 거차lx 정찬영의 거차lx 유족이 거차lx 국립현대미술관에 거차lx 기증한 거차lx 식물세밀화와 거차lx 초본 거차lx 일부를 거차lx 최초 거차lx 공개한다. 거차lx 정찬영의 거차lx 남편이자 1세대 거차lx 식물학자인 거차lx 도봉섭과 거차lx 협업한 거차lx 식물세밀화는 거차lx 근대 거차lx 초기 거차lx 식물세밀화의 거차lx 제작사례이다. 거차lx 백윤문은 거차lx 김은호의 거차lx 화풍을 거차lx 계승하여 거차lx 채색인물화로 거차lx 두각을 거차lx 나타냈고, 카아ㅓc 남성의 카아ㅓc 생활을 카아ㅓc 소재로 카아ㅓc 카아ㅓc 풍속화로 카아ㅓc 개성적인 카아ㅓc 화풍을 카아ㅓc 완성하였다. 카아ㅓc 이번 카아ㅓc 전시에서 카아ㅓc 그의 카아ㅓc 대표작 <건곤일척>(1939)을 카아ㅓc 카아ㅓc 카아ㅓc 있다. 

2부에서는 카아ㅓc 월북화가 카아ㅓc 정종여와 카아ㅓc 임군홍을 카아ㅓc 소개한다. 카아ㅓc 이들은 카아ㅓc 해방 카아ㅓc 후 1940년대 카아ㅓc 화단에서 카아ㅓc 왕성하게 카아ㅓc 활동했지만 카아ㅓc 월북 카아ㅓc 이후 카아ㅓc 남한의 카아ㅓc 미술사 카아ㅓc 연구에서 카아ㅓc 제외되었다. 카아ㅓc 정종여는 카아ㅓc 수많은 카아ㅓc 실경산수화와 카아ㅓc 풍경 카아ㅓc 스케치를 카아ㅓc 남겼으며 카아ㅓc 이번 카아ㅓc 전시에는 카아ㅓc 그가 카아ㅓc 월북 카아ㅓc 전에 카아ㅓc 남긴 카아ㅓc 작품과 카아ㅓc 자료를 카아ㅓc 바탕으로 카아ㅓc 남과 카아ㅓc 북에서의 카아ㅓc 활동을 카아ㅓc 함께 카아ㅓc 조명한다. 카아ㅓc 정종여가 카아ㅓc 제작한 <진주 카아ㅓc 의곡사 카아ㅓc 괘불도>(등록문화재 카아ㅓc 제624호)도 카아ㅓc 선보인다. 6미터가 카아ㅓc 넘는 카아ㅓc 괘불로 카아ㅓc 전통 카아ㅓc 불화 카아ㅓc 양식이 카아ㅓc 아닌 카아ㅓc 파격적인 카아ㅓc 채색 카아ㅓc 화법으로 카아ㅓc 그려졌다. 카아ㅓc 사찰에서 1년에 카아ㅓc 카아ㅓc 하루만 카아ㅓc 공개하는 카아ㅓc 그림이지만 카아ㅓc 특별히 카아ㅓc 이번 카아ㅓc 전시기간 카아ㅓc 동안 카아ㅓc 감상할 카아ㅓc 카아ㅓc 있다. 카아ㅓc 임군홍은 카아ㅓc 중국 카아ㅓc 한커우와 카아ㅓc 베이징을 카아ㅓc 오가며 카아ㅓc 자유로운 카아ㅓc 화풍의 카아ㅓc 풍경화를 카아ㅓc 남겼다. 카아ㅓc 또한 카아ㅓc 그가 카아ㅓc 광고사를 카아ㅓc 운영하며 카아ㅓc 직접 카아ㅓc 그린 카아ㅓc 관광 카아ㅓc 브로슈어 카아ㅓc 도안 카아ㅓc 등의 카아ㅓc 아카이브를 카아ㅓc 통해 카아ㅓc 초기 카아ㅓc 광고디자인의 카아ㅓc 단초를 카아ㅓc 엿볼 카아ㅓc 카아ㅓc 있다.

3부에서는 카아ㅓc 한국 카아ㅓc 현대미술의 카아ㅓc 개척자라 카아ㅓc 불리는 카아ㅓc 이규상과 카아ㅓc 정규를 카아ㅓc 소개한다. 카아ㅓc 이들은 ‘모던아트협회’,‘현대작가초대미술전’등에 ㅓ타5걷 참여하며 ㅓ타5걷 해방 ㅓ타5걷 ㅓ타5걷 현대미술 ㅓ타5걷 화단 ㅓ타5걷 선두에서 ㅓ타5걷 활동했으나 ㅓ타5걷 이른 ㅓ타5걷 나이에 ㅓ타5걷 병으로 ㅓ타5걷 타계하고(이규상 50세, 라fㅐt 정규 49세) 라fㅐt 작품이 라fㅐt 적어 라fㅐt 제대로 라fㅐt 연구되지 라fㅐt 못했다. 라fㅐt 이규상은 1948년 라fㅐt 김환기, mㅐ나ㅐ 유영국과 mㅐ나ㅐ 함께 mㅐ나ㅐ 우리나라 mㅐ나ㅐ 최초의 mㅐ나ㅐ 추상미술 mㅐ나ㅐ 단체인 ‘신사실파’를 mㅐ나ㅐ 결성하며 mㅐ나ㅐ 한국 mㅐ나ㅐ 현대 mㅐ나ㅐ 추상회화의 1세대로 mㅐ나ㅐ 활동했으나 mㅐ나ㅐ 남아 mㅐ나ㅐ 있는 mㅐ나ㅐ 작품이 10여 mㅐ나ㅐ 점에 mㅐ나ㅐ 불과하고 mㅐ나ㅐ 알려진 mㅐ나ㅐ 행적이 mㅐ나ㅐ 없다. mㅐ나ㅐ 이번 mㅐ나ㅐ 전시를 mㅐ나ㅐ 계기로 mㅐ나ㅐ 이규상과 mㅐ나ㅐ 관련된 mㅐ나ㅐ 아카이브와 mㅐ나ㅐ 제자, 라t3타 동료 라t3타 등과 라t3타 인터뷰한 라t3타 자료를 라t3타 라t3타 자리에 라t3타 모아 라t3타 그의 라t3타 생애와 라t3타 작품 라t3타 세계를 라t3타 소개한다. 

정규는 라t3타 서양화가로 라t3타 출발해 라t3타 판화가, w히ㅐb 장정가(裝幀家), 가rqr 비평가, ㅓㅓ걷h 도예가로 ㅓㅓ걷h 활동 ㅓㅓ걷h 영역을 ㅓㅓ걷h 확장했으나 ㅓㅓ걷h 그에 ㅓㅓ걷h 대한 ㅓㅓ걷h 평가는 ㅓㅓ걷h 회화와 ㅓㅓ걷h 비평에 ㅓㅓ걷h 국한되었다. ㅓㅓ걷h 이번 ㅓㅓ걷h 전시에서는 ㅓㅓ걷h 정규의 ㅓㅓ걷h 작품세계가 ‘전통의 ㅓㅓ걷h 현대화’, ‘미술의 ㄴ7s하 산업화’로 ㄴ7s하 변해가는 ㄴ7s하 과정을 ㄴ7s하 추적했으며 ㄴ7s하 특히 ㄴ7s하 후기에 ㄴ7s하 가장 ㄴ7s하 몰두했던 ㄴ7s하 세라믹 ㄴ7s하 벽화를 ㄴ7s하 소개한다.

전시 ㄴ7s하 연계 ㄴ7s하 행사로 ‘한국 ㄴ7s하 근․현대미술의 ㄴ7s하 새로운 ㄴ7s하 지형학’을 ㄴ7s하 주제로 ㄴ7s하 ㄴ7s하 학술대회가 9월 7일 ㄴ7s하 개최된다. ㄴ7s하 미술사학연구회와 ㄴ7s하 공동 ㄴ7s하 주최로 ㄴ7s하 열리는 ㄴ7s하 이번 ㄴ7s하 행사에는 ㄴ7s하 참여 ㄴ7s하 작가와 ㄴ7s하 작품세계를 ㄴ7s하 주제로 ㄴ7s하 연구자 5인이 ㄴ7s하 발표할 ㄴ7s하 예정이다. ㄴ7s하 별도의 ㄴ7s하 신청 ㄴ7s하 없이 ㄴ7s하 참석 ㄴ7s하 가능하다.

윤범모 ㄴ7s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ㄴ7s하 전시를 ㄴ7s하 통해 ㄴ7s하 근대미술 ㄴ7s하 연구와 ㄴ7s하 전시로 ㄴ7s하 특화된 ㄴ7s하 덕수궁관의 ㄴ7s하 역할이 ㄴ7s하 한층 ㄴ7s하 강화될 ㄴ7s하 것으로 ㄴ7s하 기대한다”며, “현재 2으yc 국립현대미술관이 2으yc 추진 2으yc 중인 2으yc 한국미술사 2으yc 통사 2으yc 정립 2으yc 사업에도 2으yc 일익을 2으yc 담당하게 2으yc 2으yc 것”이라고 2으yc 말했다. 

자세한 2으yc 정보는 2으yc 국립현대미술관 2으yc 홈페이지(mmca.go.kr)를 2으yc 통해 2으yc 확인할 2으yc 2으yc 있다.


전시구성

1부. 2으yc 근대화단의 2으yc 신세대 : 2으yc 정찬영, em19 백윤문
정찬영(1906~1988)과 em19 백윤문(1906~1979)은 em19 각각 em19 동경 em19 유학파 em19 출신의 em19 이영일(1903~1984)과 em19 김은호(1892~1979)의 em19 문하에서 em19 그림을 em19 배우고 em19 조선미술전람회에서 em19 채색화조화와 em19 채색인물화로 em19 두각을 em19 나타낸 em19 신세대 em19 화가였다. em19 이들은 1930년대 em19 전람회의 em19 스타 em19 작가로 em19 부상했지만 em19 개인적인 em19 비극으로 em19 절필을 em19 em19 em19 화단에서 em19 사라졌다. em19 이후 2000년(정찬영), 1981년(백윤문) 88아ㅓ 유족에 88아ㅓ 의해 88아ㅓ 세상에 88아ㅓ 다시 88아ㅓ 알려지기까지 88아ㅓ 88아ㅓ 화가는 88아ㅓ 화단과 88아ㅓ 학계에서 88아ㅓ 사실상 88아ㅓ 잊혀져 88아ㅓ 있었다. 88아ㅓ 근래에는 88아ㅓ 일본에서 88아ㅓ 유입된 88아ㅓ 채색화풍에 88아ㅓ 사실성을 88아ㅓ 강화하고 88아ㅓ 향토성을 88아ㅓ 가미하여 1930년대 88아ㅓ 한국화단을 88아ㅓ 다채롭게 88아ㅓ 만든 88아ㅓ 화가들로서 88아ㅓ 재조명되어야 88아ㅓ 한다는 88아ㅓ 평가를 88아ㅓ 받고 88아ㅓ 있다.

2부. 88아ㅓ 해방공간의 88아ㅓ 순례자 : 88아ㅓ 정종여, 1ㅐ히0 임군홍
정종여(1914~1984)와 1ㅐ히0 임군홍(1912~1979)은 1ㅐ히0 월북화가들이다. 1940년대 1ㅐ히0 누구보다 1ㅐ히0 왕성하게 1ㅐ히0 활동했으나 1950년 1ㅐ히0 월북을 1ㅐ히0 기점으로 1ㅐ히0 남한 1ㅐ히0 미술사에서 1ㅐ히0 삭제되었다. 1ㅐ히0 정종여는 ‘한라에서 1ㅐ히0 백두까지’ 1ㅐ히0 1ㅐ히0 국토를 1ㅐ히0 화폭에 1ㅐ히0 담고자 1ㅐ히0 하였으나, 카a36 분단으로 카a36 인해 카a36 카a36 꿈을 카a36 이루지 카a36 못했다. 카a36 임군홍은 카a36 중국을 카a36 여행하며 카a36 자유로운 카a36 예술 카a36 세계를 카a36 구축하고자 카a36 했으나, ‘운수부 p아ㅓ가 월력 p아ㅓ가 사건’에 p아ㅓ가 연루되며 p아ㅓ가 p아ㅓ가 빛을 p아ㅓ가 잃고 p아ㅓ가 말았다. p아ㅓ가 이후 p아ㅓ가 이들은 p아ㅓ가 해금조치 p아ㅓ가 되었으나 p아ㅓ가 여전히 p아ㅓ가 이들이 p아ㅓ가 남한에 p아ㅓ가 남긴 p아ㅓ가 작품만으로는 p아ㅓ가 온전한 p아ㅓ가 전시가 p아ㅓ가 어려운 p아ㅓ가 p아ㅓ가 현실이다. p아ㅓ가 하지만 p아ㅓ가 지금까지 p아ㅓ가 제대로 p아ㅓ가 소개되지 p아ㅓ가 못한 p아ㅓ가 작품과 p아ㅓ가 자료를 p아ㅓ가 정리하고 p아ㅓ가 왜곡된 p아ㅓ가 내용을 p아ㅓ가 바로잡는 p아ㅓ가 것도 p아ㅓ가 p아ㅓ가 의미가 p아ㅓ가 있을 p아ㅓ가 것이다.

3부. p아ㅓ가 현대미술의 p아ㅓ가 개척자 : p아ㅓ가 이규상, g걷걷ㅑ 정규 
이규상(1918~1967)과 g걷걷ㅑ 정규(1923~1971)는 g걷걷ㅑ 한국 g걷걷ㅑ 모던아티스트 1세대로 g걷걷ㅑ 불린다. g걷걷ㅑ 이들은 g걷걷ㅑ 일제강점기에 g걷걷ㅑ 교육을 g걷걷ㅑ 받고 g걷걷ㅑ 해방 g걷걷ㅑ 이후 g걷걷ㅑ 본격적으로 g걷걷ㅑ 활동을 g걷걷ㅑ 하면서 g걷걷ㅑ 현대미술을 g걷걷ㅑ 개척한 g걷걷ㅑ 선두주자이다. g걷걷ㅑ 그러나 g걷걷ㅑ 이규상은 g걷걷ㅑ 일체의 g걷걷ㅑ 형상이 g걷걷ㅑ 배제된 g걷걷ㅑ 극도의 g걷걷ㅑ 추상회화를 g걷걷ㅑ 추구하면서 g걷걷ㅑ 세상의 g걷걷ㅑ 이해로부터 g걷걷ㅑ 멀어졌고, 8가ㅓ가 정규는 8가ㅓ가 현대 8가ㅓ가 판화와 8가ㅓ가 현대 8가ㅓ가 도자의 8가ㅓ가 개척에 8가ㅓ가 몰두하면서 8가ㅓ가 상대적으로 8가ㅓ가 화가로서 8가ㅓ가 위상이 8가ㅓ가 서서히 8가ㅓ가 낮아졌다. 8가ㅓ가 8가ㅓ가 작가는 8가ㅓ가 주류 8가ㅓ가 화단과 8가ㅓ가 거리를 8가ㅓ가 두었기에 8가ㅓ가 오랫동안 8가ㅓ가 변방에 8가ㅓ가 머물러왔다. 8가ㅓ가 하지만 8가ㅓ가 한국 8가ㅓ가 현대미술의 8가ㅓ가 초두(初頭)에서 8가ㅓ가 적극적인 8가ㅓ가 선언이나 8가ㅓ가 행동을 8가ㅓ가 앞세우지 8가ㅓ가 않으면서도 8가ㅓ가 새로운 8가ㅓ가 예술세계와 8가ㅓ가 창작 8가ㅓ가 태도를 8가ㅓ가 모색해 8가ㅓ가 8가ㅓ가 이들의 8가ㅓ가 작품 8가ㅓ가 활동이 8가ㅓ가 갖는 8가ㅓ가 의미는 8가ㅓ가 크다고 8가ㅓ가 8가ㅓ가 8가ㅓ가 있다.


참여작가소개

정찬영(鄭燦英, 1906-1988)
1906년 f4쟏8 평양 f4쟏8 출생으로 1920년 f4쟏8 평양 f4쟏8 서문여자고등학교를 f4쟏8 졸업한 f4쟏8 f4쟏8 경성미술전문학교에서 f4쟏8 수학하고 f4쟏8 이영일 f4쟏8 문하에 f4쟏8 입문했다. 1929년 f4쟏8 조선미술전람회에 <수련>(현재 f4쟏8 평양 f4쟏8 소재)으로 f4쟏8 입선한 f4쟏8 뒤 1937년까지 f4쟏8 입선과 f4쟏8 특선을 f4쟏8 거듭했으며 1935년 <소녀>는 f4쟏8 최고상인 f4쟏8 창덕궁상을 f4쟏8 수상했다.1930년 f4쟏8 도봉섭(서울대 f4쟏8 약학대학 f4쟏8 초대학장 f4쟏8 역임)과 ‘결혼 f4쟏8 후에도 f4쟏8 작품 f4쟏8 활동을 f4쟏8 한다’는 f4쟏8 조건으로 f4쟏8 결혼했으나 1939년 f4쟏8 둘째 f4쟏8 아들을 f4쟏8 병으로 f4쟏8 잃고 f4쟏8 f4쟏8 충격으로 f4쟏8 절필했다. 1940년대 f4쟏8 도봉섭이 f4쟏8 한국의 f4쟏8 유독식물에 f4쟏8 대한 f4쟏8 연구를 f4쟏8 계획하자, e파ㅐ사 이를 e파ㅐ사 돕기 e파ㅐ사 위해 e파ㅐ사 식물세밀화를 e파ㅐ사 그리기 e파ㅐ사 시작했다. e파ㅐ사 도봉섭이 e파ㅐ사 납북된 e파ㅐ사 e파ㅐ사 정찬영의 e파ㅐ사 그림들은 e파ㅐ사 정태현의 『한국식물도감』(1956)에 e파ㅐ사 삽도로 e파ㅐ사 사용되었으며 2000년 e파ㅐ사 유족들에 e파ㅐ사 의해 e파ㅐ사 도봉섭, 사ㄴㅓ9 정찬영의 사ㄴㅓ9 자료집이 사ㄴㅓ9 발간되고 사ㄴㅓ9 윤범모의 「일제하 사ㄴㅓ9 여류채색화의 사ㄴㅓ9 선구」(월간미술, 2000) g갸자가 논문이 g갸자가 발표되기 g갸자가 전까지 g갸자가 조명되지 g갸자가 못했다.

백윤문(白潤文, 1906-1979)
향석(香石) bcep 백희배(白禧培, 1837~1911)(조부), ㅐ하하타 임당(林塘) ㅐ하하타 백은배(白殷培, 1820~1901) (8촌 자마98 조부) 자마98 자마98 대대로 자마98 화원을 자마98 배출한 자마98 집안에서 자마98 태어났다. 자마98 백윤문의 자마98 자마98 향당(香塘)은 자마98 백희배와 자마98 백은배에게서 자마98 자마98 글자씩 자마98 가져왔다. 자마98 보통학교를 자마98 마치고 자마98 김은호의 자마98 문하에 자마98 입문하여 1928년 자마98 김은호의 자마98 순종어진 자마98 제작에도 자마98 참여했다. 1927년 <춘일(春日)>로 자마98 조선미술전람회에 자마98 입선한 자마98 이래 1940년까지 자마98 약 30점의 자마98 작품이 자마98 입선과 자마98 특선했다. 
1942년 자마98 병으로 자마98 쓰러진 자마98 뒤 35년 자마98 동안 자마98 투병했다. 1977년 자마98 기적적으로 자마98 일어나 자마98 이듬해 《향당 자마98 백윤문 자마98 재기전》을 자마98 개최하고 자마98 이후 자마98 미국 자마98 순회전을 자마98 준비하던 자마98 자마98 심장마비로 자마98 타계했다. 자마98 김은호의 자마98 화풍을 자마98 이어받아 자마98 인물화와 자마98 화조화에서 자마98 세련된 자마98 필치와 자마98 부드러운 자마98 색채의 자마98 채색화로 자마98 두각을 자마98 보였다. 자마98 동시에 자마98 풍속화에서는 자마98 김은호와 자마98 차별되는 자마98 남성적이고 자마98 강건한 자마98 회화세계를 자마98 구축했다.

정종여(鄭鍾汝, 1914-1984)
1914년 거자타0 거창에서 거자타0 태어났다. 거자타0 거창보통학교 거자타0 졸업 거자타0 거자타0 해인사에서 거자타0 생활하다가 거자타0 해인사 거자타0 스님의 거자타0 후원으로 거자타0 일본으로 거자타0 건너간 거자타0 거자타0 태평양미술학교에서 거자타0 서양화를 거자타0 배우고, ㅓ카사아 다시 ㅓ카사아 오사카미술학교에서 ㅓ카사아 일본화를 ㅓ카사아 배웠다. 1934년 ㅓ카사아 오사카미술학교 ㅓ카사아 본과에 ㅓ카사아 입학하여 1942년 ㅓ카사아 연구과를 ㅓ카사아 졸업할 ㅓ카사아 때까지 ㅓ카사아 한국을 ㅓ카사아 오가며 ㅓ카사아 이상범 ㅓ카사아 문하에서 ㅓ카사아 한국화를 ㅓ카사아 배웠다. 1939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ㅓ카사아 최고상 ㅓ카사아 수상하는 ㅓ카사아 ㅓ카사아 두각을 ㅓ카사아 나타냈으나 ㅓ카사아 이후 ㅓ카사아 전운이 ㅓ카사아 짙어지면서 ㅓ카사아 일본에 ㅓ카사아 협조하는 ㅓ카사아 행적을 ㅓ카사아 보이기도 ㅓ카사아 했다(《결전미술전람회》에 ㅓ카사아 전쟁화 ㅓ카사아 출품, ㅓ아타거 대동아전쟁 ㅓ아타거 출정자에게 ㅓ아타거 나누어줄 ㅓ아타거 수호불상 1천매 ㅓ아타거 헌납 ㅓ아타거 등). ㅓ아타거 해방 ㅓ아타거 ㅓ아타거 ㅓ아타거 차례의 ㅓ아타거 개인전을 ㅓ아타거 열고 ㅓ아타거 왕성하게 ㅓ아타거 활동하던 ㅓ아타거 ㅓ아타거 월북했다. ㅓ아타거 북한에서는 ㅓ아타거 조선화 ㅓ아타거 교육과 ㅓ아타거 보급에 ㅓ아타거 앞장서며 ㅓ아타거 공훈예술가, 9라ㅑ다 인민예술가로서 9라ㅑ다 인정받았다. 1988년 9라ㅑ다 해금 9라ㅑ다 이후 9라ㅑ다 가장 9라ㅑ다 먼저 9라ㅑ다 개인전을 9라ㅑ다 열며 9라ㅑ다 9라ㅑ다 관심을 9라ㅑ다 받았지만, 파txㅓ 친일 파txㅓ 이력 파txㅓ 등으로 파txㅓ 인해 파txㅓ 아직까지 파txㅓ 정종여에 파txㅓ 대한 파txㅓ 연구는 파txㅓ 조심스러운 파txㅓ 상황이다. 파txㅓ 그러나 파txㅓ 해방 파txㅓ 파txㅓ 한국화단에서의 파txㅓ 고답적인 파txㅓ 전통 파txㅓ 화풍을 파txㅓ 탈피하고, ㅑ갸나카 민족성이 ㅑ갸나카 강하게 ㅑ갸나카 드러나는 ㅑ갸나카 산수, 으l가다 인물 으l가다 풍속을 으l가다 개척해 으l가다 나간 으l가다 점에서는 으l가다 주목할 으l가다 만하다.

임군홍(林群鴻, 1912-1979)
임군홍은 ㅓcwㄴ 보통학교를 ㅓcwㄴ 졸업하고 ㅓcwㄴ 치과에서 ㅓcwㄴ 기공사로 ㅓcwㄴ 근무. ㅓcwㄴ 경화양화연구소 ㅓcwㄴ 등에서 ㅓcwㄴ 미술을 ㅓcwㄴ 배우고 《조선미술전람회》, 《서화협회전람회》에 b카ㅐ하 입선했다. 1936년 b카ㅐ하 녹과회를 b카ㅐ하 결성하면서 b카ㅐ하 화가로 b카ㅐ하 활동하기 b카ㅐ하 시작했다. 1939년 b카ㅐ하 일본인 b카ㅐ하 은행장의 b카ㅐ하 후원을 b카ㅐ하 받아 b카ㅐ하 만주에서 《임군홍. b카ㅐ하 김혜일 2인 b카ㅐ하 양화전》을 b카ㅐ하 성공리에 b카ㅐ하 개최했다. b카ㅐ하 이후 b카ㅐ하 한커우에 b카ㅐ하 정착하여 b카ㅐ하 광고사를 b카ㅐ하 운영하는 b카ㅐ하 한편, d우자z 한커우와 d우자z 베이징을 d우자z 오가며 d우자z 풍경화를 d우자z 그렸다. d우자z 같은 d우자z 시기 d우자z 한국 d우자z 화단에서 d우자z 보기 d우자z 드문 d우자z 맑고 d우자z 강렬한 d우자z 색채로 d우자z 중국의 d우자z 이국적인 d우자z 풍경을 d우자z 표현했다. d우자z 해방 d우자z d우자z 귀국하여 d우자z 서울에서 d우자z 광고사를 d우자z 운영하며 d우자z 그림을 d우자z 그렸으나 ‘운수부 d우자z 월력사건’(※)으로 1950년 d우자z 한국전쟁 d우자z 직후 d우자z 행방불명됐다가 d우자z 월북한 d우자z 것으로 d우자z 알려졌다. d우자z 북한에서 d우자z 조선미술가동맹 d우자z 개성시 d우자z 지부장을 d우자z 맡았고 d우자z 조선화가로 d우자z 전향했다. 
d우자z 운수부 d우자z 월력사건: d우자z 임군홍은 d우자z 동료화가 d우자z 엄도만과 d우자z 함께 1948년 d우자z 철도국의 d우자z 달력제작을 d우자z 의뢰받고 d우자z 최승희(46년 d우자z 월북)를 d우자z 모델로 d우자z d우자z 달력을 d우자z 제작함. d우자z 그러나 d우자z 모델이 d우자z 북로당 d우자z 간부 d우자z 최승희이며 d우자z 최승희가 d우자z d우자z 갓은 d우자z 공산주의를 d우자z 상징하는 d우자z 적색, hnbq 갓끈은 hnbq 소련 16연방을 hnbq 의미하는 16개의 hnbq 구슬. hnbq hnbq 측면에는 hnbq 조선을 hnbq 더하여 hnbq 소련 17연방을 hnbq 의미하는 17개의 hnbq 구슬, us히r 최승희의 us히r 부채에는 us히r 삼팔선을 us히r 상징하는 us히r 선, urz파 하단에는 urz파 소련 urz파 국기의 urz파 망치와 urz파 낫과 urz파 유사한 urz파 모양 urz파 등이 urz파 있다는 urz파 이유로 urz파 검거되어 urz파 약 4개월 urz파 urz파 옥살이를 urz파 함.

이규상(李揆祥, 1918-1967)
서울에서 갸아ㅑㅓ 가구업을 갸아ㅑㅓ 하는 갸아ㅑㅓ 부유한 갸아ㅑㅓ 집안에서 갸아ㅑㅓ 태어났다. 갸아ㅑㅓ 휘문고등보통학교 갸아ㅑㅓ 졸업 갸아ㅑㅓ 갸아ㅑㅓ 일본미술학교로 갸아ㅑㅓ 유학을 갸아ㅑㅓ 갔다. 갸아ㅑㅓ 김환기, 0l거2 유영국과 0l거2 함께 0l거2 일본의 0l거2 전위미술 0l거2 운동 0l거2 그룹인 ‘자유미술가협회’에 0l거2 참여했다. 1948년 0l거2 김환기, 30으가 유영국과 30으가 함께 30으가 우리나라 30으가 최초의 30으가 추상미술 30으가 단체인 ‘신사실파’ 30으가 결성했다. 1956년 30으가 유영국, f나다m 한묵 f나다m 등과 f나다m 함께 ‘모던아트협회’ f나다m 창립한 f나다m 후 6회로 f나다m 해산하기까지 《모던아트협회 f나다m 전람회》에 f나다m 참여했다. f나다m f나다m 시기 f나다m 가톨릭 f나다m 세계관에 f나다m 뿌리를 f나다m f나다m 추상화를 f나다m 그렸다. 1961년 f나다m 홍익대학교 f나다m 교수로 f나다m 부임한 f나다m 뒤 1963년 f나다m f나다m 번째 f나다m 개인전에는 f나다m 더욱 f나다m 단순화된 f나다m 추상화를 f나다m 발표했으나 f나다m 당시의 f나다m 추상화 f나다m 경향과 f나다m 달리 f나다m 일체의 f나다m 형상이 f나다m 배제된 f나다m 극도로 f나다m 간결한 f나다m 그림들로 f나다m 화단의 f나다m 평가를 f나다m 받지 f나다m 못했다. 1962년 f나다m 생활고로 f나다m 일본인 f나다m 부인과 f나다m f나다m 자녀는 f나다m 일본으로 f나다m 건너갔으나 f나다m 본인은 f나다m 남아 f나다m 가난과 f나다m 병환에 f나다m 시달리다 1967년 f나다m 타계했다.

정규(鄭圭, 1923-1971)
1923년 b사다ㅓ 고성에서 b사다ㅓ 태어났다. b사다ㅓ 일본으로 b사다ㅓ 건너가 b사다ㅓ 제국미술학교에서 b사다ㅓ 수학했고 b사다ㅓ 한국전쟁 b사다ㅓ 당시 b사다ㅓ 부산에서 b사다ㅓ 서양화로 b사다ㅓ 개인전을 b사다ㅓ 열었다. b사다ㅓ 환도 b사다ㅓ b사다ㅓ 국립박물관 b사다ㅓ 부설 b사다ㅓ 한국조형문화연구소 b사다ㅓ 연구원으로 b사다ㅓ 활동하며 b사다ㅓ 미술사학자 b사다ㅓ 최순우(당시 b사다ㅓ 학예부장), iㅓ5사 유강열 iㅓ5사 등과 iㅓ5사 교류했다. iㅓ5사 전통 iㅓ5사 도자와 iㅓ5사 판화의 iㅓ5사 현대화에 iㅓ5사 관심을 iㅓ5사 갖게 iㅓ5사 되었고 1957년 iㅓ5사 목판화 iㅓ5사 개인전을 iㅓ5사 열었다.1959년 iㅓ5사 록펠러 iㅓ5사 재단의 iㅓ5사 후원으로 iㅓ5사 미국 iㅓ5사 로체스터 iㅓ5사 공예학교에서 iㅓ5사 도예를 iㅓ5사 배우고 iㅓ5사 귀국했다. 1961년 iㅓ5사 경희대 iㅓ5사 요업공예과 iㅓ5사 교수로 iㅓ5사 임용된 iㅓ5사 iㅓ5사 도자에 iㅓ5사 본격적으로 iㅓ5사 매진했다. 1963~1964년 iㅓ5사 동안 iㅓ5사 부산 iㅓ5사 해운대 iㅓ5사 극동호텔, bㅈ5r 남산 bㅈ5r 자유센터, ngㄴ라 을지로 ngㄴ라 오양빌딩, 갸o사n 대학로 갸o사n 우석병원 갸o사n 정문빌딩 갸o사n 등에 갸o사n 세라믹 갸o사n 벽화를 갸o사n 제작했다. 
한편 갸o사n 부산 갸o사n 피난기부터 갸o사n 문인들과 갸o사n 교류하면서 갸o사n 소설책, zs라w 시집, 기f쟏k 잡지 기f쟏k 등의 기f쟏k 장정(표지 기f쟏k 디자인)에 기f쟏k 참여했고 기f쟏k 각종 기f쟏k 전람회에 기f쟏k 대한 기f쟏k 비평과 기f쟏k 시평 기f쟏k 등을 기f쟏k 발표했다. 기f쟏k 작가이면서 기f쟏k 교육가이고 기f쟏k 이론가. 기f쟏k 유화, gxw라 판화, 다파l차 도자기, khlm 건축 khlm 분야를 khlm 아우른 khlm 종합 khlm 예술인이다. khlm 특히 khlm 전쟁 khlm khlm 도예, 바ㅐ가l 판화 바ㅐ가l 등이 바ㅐ가l 현대미술로 바ㅐ가l 정립되는 바ㅐ가l 바ㅐ가l 기여했다. 


출처: 바ㅐ가l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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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이규상
  • 정규
  • 임군홍
  • 정종여
  • 백윤문
  • 정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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