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남 개인전 : 수인선 Ko, Jungnam : Suin Railroad

플레이스막 인천

2019년 7월 18일 ~ 2019년 7월 28일

어디에나 있는,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우리 안의 수인선
박석태(미술비평)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다. / 아무도 간 사람이 없었다. // 처음엔 바람이 비탈길을 깎아 흙먼지를 풀풀 날리었다. / 하늘을 깎고 어둠을 깎고 눈(雪)의 살을 깎는 소리가 떨어졌다. / 산도 숲속에 숨어 있었다. / 얼음도 깎인 벼의 밑둥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 매 한 마리가 산까치를 움켜잡고 하늘 깊숙이 파묻혔다. / 얼음장 위로 얼굴을 내밀었던 은빛 햇살도 사라졌다. / 묘지에 서로 모여 갈대가 울었다. 그 속으로 눈발이 힘없이 쓰러졌다. / 어둠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위어 있었다. / 뒤엉켜 죽은 망초꽃들이 휘익휘익 공중에서 말하고 지나갔다. / ‘그것봐’ ‘그것봐’ / 황토빛 자갈이 주르르 넘어졌다. 구르고 지난 자리마다 사정없이 눈(雪)이 꽂혔다. - 기형도, <사강리(沙江里)>

수인선 1
멋도 모르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그대로 주저앉아 살게 된 인천. 인천은 우리 가족이 살던 서울 구로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곳처럼 먼지로 뒤덮인 회색 벽이 있었고, 집 앞에는 부지런히 흰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이 있었고, 어른들이 타박하던 우리들의 좁다란 골목이 있었다. 그리고 그저 텅 비어 있어 늘 나른하게 보이는 공터가 있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찾은 소래는 달랐다. 그곳은 황량한 노란색과 빛바랜 회색, 그리고 펄 속의 이름 모를 식물들이 내뿜는 기묘한 붉은색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볕이 아찔하도록 좋았던 어느 여름날, 어린 눈에도 좁아 보이는 궤도를 비틀거리듯 느릿느릿 무거운 몸짓으로 어슬렁거리던 꼬마 열차가 있었다. 회색빛 바닷물이 개울처럼 흐르는 낡은 철교 위에서 사람들이 느릿한 열차를 피해 종종걸음을 쳤다. 나는 “저 열차에 치어도 사람이 죽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곳이 목적지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기차를 기다리곤 했던 소래역과 송도역에서 풍기던 진득하고 저릿한 짠내는 지금도 그곳의 기표로 나에게 남아 있다. 이제야 그것이 고단해서 짜디 짤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을 닮은 젓갈의 냄새였음을 안다. 그렇게 나와 수인선의 기나긴 인연은 시작되었다. 

수인선 2
지형이 호랑이의 아가리처럼 생겼다고 이름 붙여진 호구포. 그곳에 ‘새로 만든 수인선’ 역 중의 하나가 들어섰다. 내가 호구포역 근처로 이사한 때는 서른이 넘어서였다. 복선화가 됐다는 수인선은 역시나 황량했다. 해질녘이면 저 멀리 타는 듯한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송도신도시의 실루엣이 유령처럼 다가왔다. 이제 막 지은 집 특유의 역한 냄새가 점령한 임대아파트 14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호구포는, 냄새 나는 물가에 아무렇게나 막 자란 풀들과 그 누추함을 있는 힘 다해 감추려는 듯한 근린공원의 반듯함이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곳에 포구가 있었다는 사실은 간신히 역사(驛舍)의 네온 간판을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고, 실은 수인선 어느 곳에서나 대면하게 되는 획일적인 부조화와 그로 인한 생경함만 가득했다.
촌스러운 ‘남동공단역’이 아니라 국제적 품격을 지닌 이름인 ‘남동인더스파크역’ 쪽에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시큼함과 매캐함이 섞인 냄새가 아파트 창틈으로 스멀스멀 비집고 들어왔다. 냄새라면 남동공단의 그것과 품격 있는 남동인더스파크의 그것이 다르지 않았다. 4년의 임대기간 동안 나는 ‘여전히’ 공사 중인 수인선을 오고가는 전동차에 몸을 싣고 남동공단을 지나 원인재와 연수를 거친 후 송도역에서 내려 일터가 있는 인천역 부근까지 버스로 이동하고는 했다. 마침내 지금은 공사가 끝났으므로 인천역에 이르는 철길까지 우리는 수인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곳에 계속 살고 있었다면 버스 따위는 타지 않았으리라.

고정남, 그리고 수인선
고정남의 《수인선》 시리즈를 대했을 때, 나는 그의 사진들이 전해주는 이미지에 집중하기보다 거기서 풍기는 듯한 냄새에 먼저 반응했다. 예전에 알던 젓갈의 비릿한 냄새도, 개펄의 짠내도 아니었다. 뙤약볕이 한창이던 시골역사 한켠에 구부정하게 서 있던 수양버들 그늘이 발산하던 싱그러운 냄새도 아니었다. 그의 사진 <야목역>의 덤프트럭이 지날 때마다 바람에 풀풀 날리는 바싹 마른 먼지 냄새였고, 고색역과 봉담역을 찍은 사진이 담고 있는 축축한 콘크리트 내음이었다. 허나 사실 이 냄새는 딱히 수인선과 맞닿아 있지는 않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하다 못해 친근한, ‘건설’ 이미지의 후각적 표징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에서 풍기는 냄새는 우리에게 보편적이다. 한때 아낙들이 건져 올렸을 조개 같이 비릿한 것들은 이제 트럭의 억센 바퀴 밑에서 산산조각이 나고(<야목역>), 어천역 주변에 뒹구는 이정표에 새겨진 ‘반월’ 지명도 처연하다. 그뿐인가. 송도역 한편에 오래도록 방치되었음이 분명한 물탱크 혹은 기름탱크는 이미 식물의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장으로 변화한 지 오래다. 새로운 노선을 만들었으므로 이제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야목역의 교각과 철교는 폐사지처럼 허허로운데, 저 멀리 효율적인 용적률을 자랑하는 대규모의 고층아파트단지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의 카메라는 물끄러미 그런 광경을 담아낼 뿐이다. 그와 같은 걸 느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제시할 뿐.

고정남, 수인선, 그리고 사람들 
다소 건조한 이야기. 수인선은 이름대로 당연히 수원과 인천을 잇는다. 그 중간에는 안산과 시흥을 지난다. 1995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운행을 중단했다가 20년 만에 다시 탄생했다. 워낙에 수인선은 일제강점기에 여주와 수원을 잇던 ‘수려선’을 통해 싣고 왔던 그 좋은 여주쌀과 소래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산업철도로 놓였다. 보통 철도에 비해 폭이 절반 정도였기에 협궤열차, 꼬마열차로 불렸다. 해방이 왔고, 수인선은 이제 인천과 수원 사이의 넓은 빈터, 아무 것도 없어서 황량하리만치 넓었던 경기 남부의 소도시들을 관통하며 도시의 느린 변화를 바라보았다. 바야흐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하여 사람들의 질펀한 이야기가 꽃을 피우는 수인선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길이 있는 곳에 어찌 사람의 이야기가 빠질 수 있을까. 고정남의 카메라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선을 옮긴다. 그것도 수인선의 역사가 베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대로 《수인선》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된다. <신포역>에 등장하는 중년의 남성은 적산가옥으로 보이는 일본식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집 앞에는 이제 공사를 막 시작하려는지 건설자재와 중장비가 보인다. 고정남은 ‘신포역’이라는 역사의 이름을 소환하는 동시에 한 남성의 모습을 중첩시킴으로써 우리에게 근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지도 모른다. <신포역>의 또 다른 사진 한 장.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강아지를 안고 엷은 미소를 띤 채 카메라를 응시한다. 오래되어 원래의 구조가 바뀌기에 이른 세월의 더께와 싱그러운 미소를 보이는 소녀의 극적 대비가 오히려 심상하다. 그런 식이다. 그는 그저 제시한다.

<인천역>에 포착된 중년 남성 옆에 놓인 짐수레에는 ‘일본통운(日本通運)’ 로고가 선명하다. 이를 통해 인천역의 역사적 맥락을 자연스레 보여줄 뿐이다. 그러므로 ‘중년 남성의 초상’은 ‘일본통운’이라는 기호를 돕는 장치로 작용한다. <원인재역> 속 3명의 아시아계 이주노동자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옛 수인선 철교의 교각과 그 밑의 무성한 잡초를 배경으로 서 있다. 마치 유명한 관광지에서 찍은 기념사진처럼 그들은 ‘성의껏’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나치게 진지해서 오히려 우습지만, 이 역시 수인선을 오가는 사람들의 삶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밖에도 수인선을 따라 농사짓는 사람들이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곤 하는데, <어천역>의 젊은 도시농부가 그렇고, <월곶역>의 노인과 부부들이 그렇다. 수인선 특유의 산업화된 모습과 전통적 생활방식이 혼재된 모습은 그대로 우리 사회의 단편으로 보인다. 고정남은 그들을 아무런 편견 없이 담아낸다.

고정남은 결코 ‘폼 잡지 않고’ 우리의 굴절된 근대와 급속도로 진행된 현대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버무린다. 그렇다고 그의 사진이 만만한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그의 역사적 인식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연출을 시도하거나, 개발과 그 속에 도사린 자본의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을 선택한 사진을 제시하기도 한다. <원인재역> 중 잡초 속에 놓인 레코드판 표지는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중앙에, 주변에는 ‘일본축음기상회(日本蓄音機商會)’ 지점의 현황이 인쇄되어 있다. 이는 전작인 《호남선》 시리즈에서 1921년에 발행된 호남 관광안내도를 제시한 것을 떠올리게 하는 바, ‘일본축음기상회’ 레코드판 표지를 통해 수인선 건설의 역사적 배경을 자연스레 전해준다. <사리역>에서는 농작물 재배를 위해 밭고랑에 설치한 막을 주변의 학원 현수막을 이용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은근히 성장·경쟁 중심의 이 사회에 야유를 보내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방식은 결코 무겁지 않다.

어디에나 있되, 어디에도 없는 풍경
고정남이 보여주는 《수인선》 시리즈는 철길과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유쾌하지만 묵직한 일종의 시각적 보고서다. 수인선이라는 소위 ‘변두리’는 서글픈 근대의 기억과 그로 인한 집단의 욕망이 혼재되었으나, 여전히 그에 기댄 삶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인다. 그것이 ‘중앙’의 세련되고 정제된 방식이 아니므로 더욱 눈에 띌 뿐이다. 서두에 인용한 기형도의 시 <사강리>의 어수선하고도 스산한 풍경이 이와 같았을까? ‘바람이 비탈길을 깎아 흙먼지를 풀풀 날리’는, ‘황토빛 자갈이 주르르 넘어’지는 서걱거리는 풍경은 오늘도 수인선 전동차 창밖에 펼쳐진다. 고정남은 그 흔한 우리의 풍경을 성실한 소요자의 시선으로 기록한다. 그러므로 기형도의 펜과 고정남의 눈을 통해 보는 수인선의 풍경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으되, 어디에도 없다. 이제 우리도 늘 존재해 왔지만 한 번도 의미를 지녀 본 적 없는 저마다의 풍경을 만들어 봐도 좋지 않을까. 여기와 저기를 잇다가 마침내 사람의 이야기로 가득해진 좁고 느릿한 기차처럼.

출처: 플레이스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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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고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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