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 - 단편집: 죽지 않는 것들

이응노미술관

2021년 9월 7일 ~ 2021년 9월 28일

시간을 그리다.
2021 아트랩, 강철규 전에 부쳐

민희정 (미술이론)

언어, 행위, 신체는 물론 예술가의 바나나마저 작품이 되는 오늘, 이러한 아방가르드적 선언이나 날카로운 비판이 아닌 전통적인 형식을 고집한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긴밀한 관계성으로 작가는 늘 새로운 예술의 근원이다. 강철규는 자신의 삶을 예술적 원천으로 삼는다. 그는 기꺼이 자신을 꺼내 예술작품의 의미를 갖기 위해 성찰하고 관객과 공유한다. 자신이 동시대적 표상이 아닌 하나의 모티브로서 다양한 심리적 문제에 대한 치유의 매개체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상실, 소외, 실패와 같은 부정적 경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고독에 대한 공감과 위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심상 깊은 곳까지 추적하여 무의식의 뿌리를 드러낸다. 그것은 조화롭게 현실의 고독과도 조우할 수 있는 평정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렇게 기억 속 영상들을 깎아내고 얇게 압축하여 트라우마를 하나의 조각으로 축소하는 전착박소(剪錯薄小)의 행위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분자는 관객을 아득한 연민으로 이끈다.

강철규의 문학적 재능은 소외되고 지친 군상을 담았던 초기 작품부터 드러났다. 그는 초록이 우거진 숲과 우주로부터의 빛에 매료되어 이를 추적하는 여정을 시작하면서 작은 공간까지도 소설이나 영화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세계관이나 일정한 환경을 설정했다. 그리고 같은 패턴의 연작이 아닌 한 땀 한 땀 바느질하여 하나의 신(scene)으로 완성한 회화를 선보였으며 이어서 시퀀스(Sequence)를 이루는 작업에 다다른다. 그의 작업들이 사진이나 영화의 용어들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그가 영상매체에서 볼 수 있었던 효과나 속성들을 회화로 끌어당겨 고착하는 다양한 실험들 또한 전개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그가 전통적인 회화가 가지는 견고한 이미지로서의 위치나 그 예술적 권위를 해체하고, 포스트휴먼 시대의 회화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완벽한 사물로서의 예술품을 제작하려는 의도가 없으며, 앞선 미의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태도 또한 찾을 수 없다.

강철규는 이번 전시에서 관객에게 오디오 북을 제공한다. 이는 흔히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관객들 스스로가 퍼즐처럼 오디오를 이미지와 맞춰 시각적 서사라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도록 한 것이다. 화이트 큐브에 관객이 발을 들이는 순간, 눈 깜빡임이나 눈높이에 따른 시선, 그리고 각기 다른 시력까지, 작가는 이처럼 조건이 다른 관객들의 시각을 통제할 수 없다. 같은 이유에서 관객 역시 작가의 의도대로 이미지를 맞춰 나간다 해도 그 서사는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 운명적 조건으로 오랫동안 회화의 절대성과 순수성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시대에 이르러 이 벽은 허물어 졌다. 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관객들에게 작품의 완성을 맡기고 복합적인 의미작용을 찾거나 새롭게 의미를 구성하는 아이디어만으로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는다. 회화의 끈질긴 생명력을 감지한 강철규는 다시금 원류로 돌아갔다. 그는 중세의 예술가들이 신화라는 원형적인 텍스트를 세밀화로 옮기는 작업을 했던 것처럼, 누구나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테크놀로지 시대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전사한다. 그것은 반복이 아닌 새로운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회화에 대한 모색으로부터 나온 결과였다.

재현한다는 것은 과거의 시간을 붙잡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 한정된 순간들, 이처럼 안타까운 시간들을 추모하며 시간의 구속이 없는 공간에서 만들어진 텍스트와 이미지를 연결한다. 그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초현실적 세계는 먹먹하고 절망적인, 그래서 숨 막히도록 피폐한 현실적 상황에 잠시간 열린 탈출구로서, 그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이 여전히 적용되는 이 세계에 지금껏 매료되어 왔다. 그리고 그 공간은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 달콤한 열매를 따먹는 파라다이스 같은 나라가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법칙 앞에 무력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움이 반복되는 현실보다 더 매서운 곳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 이유는 어두움을 더 짙은 어두움으로 맞서며 좀 더 강한 모습이 되어 현실로 돌아갈 것을 주문하는 것이 아닐까? 멈출 수 없는 심장과 달리 우리의 시지각(視知覺)은 휴식이 가능하다. 잠시 눈감는 사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 수 있기에 우리는 망설임 없이 끝없는 신화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다.

참여작가: 강철규

출처: 이응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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