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에서 강요배 개인전을 1부, 2부 전으로 나누어 열고 있다. 1부 전 ‘상(象)을 찾아서’는 5월 25일부터 6월 17일까지 성공적 개최를 마쳤다. 작가의 최근 작품 경향을 보여주며 강요배 작품 세계와 그 흐름을 심도 있게 파악했다는 평을 받았다. 2부 전은 ‘메멘토, 동백’이라는 주제로 오는 6월 22일부터 7월 15일까지 열린다. ‘동백꽃 지다’로 널리 알려진 강요배의 역사화를 한자리에 모은다. 1989년~1992년 제작 작품 50여 점과 1992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한 점씩 4∙3을 기념하여 제작한 작품 10여 점을 ‘동백꽃 지다’와 ‘동백 이후’라는 파트로 만날 수 있다.
강요배의 작품은 깊이 들어가 보면 그가 그리는 것이 특정 지역의 모습이라기보다 그 안에서 전개된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살아낸 인간에 대한 숙고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예술과 삶이 분리된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시대를 호흡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작품을 통해 미술이 현대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고찰을 살필 수 있다.
강요배는 제주 4∙3 항쟁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동백꽃 지다’(1991)를 그린 작가다. ‘제주 민중항쟁사’(1992, 학고재) 전시로 한국 사회에 제주 4∙3 항쟁의 실체를 바로 알리며 역사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제주 4∙3 항쟁 70주년에 선보이는 강요배 역사화의 총체는 그래서 의미가 더 깊다. 역사에 대한 기억과 이해,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존중과 추모의 중요성을 강하게 일깨운다. 작가와 학고재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지금까지의 작품 세계를 정리하며 되새겨보고 앞으로 나아갈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작가소개
강요배는 1952년 제주시 삼양동에서 태어났다. 강요배의 이름과 관련해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들을 색출했다. 색출 당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른다는 이유로 함께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와 같이 당시 널리 쓰인 이름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 나갔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그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신의 자식 이름은 절대 남들이 같이 지을 수 없는 이름 글자를 찾아서 尧(요나라 요), 培(북돋을 배)를 써서 강요배라고 지었다. 강요배는 태어날 때부터 제주라는 땅이 품고 있는 역사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태어났다.
강요배는 어린 시절 마을 도서관에서 빌려본 그림책에서 화가에 대해 동경을 느껴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197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76년 제주시 관덕정 인근의 대호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때 쓴 작가노트에서 “삶 자체와 공존의 울림”을 최상의 가치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1977년부터 ‘관점’ 미술 동인으로 활동하며 전시를 했다. ‘관점’ 동인전에 아홉 차례 참여하며 작품을 선보이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강요배가 현실과 시대, 그리고 역사와 미술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1981년 ‘현실과 발언’의 동인이 되면서부터다. '도시와 시각'(1981), ‘행복의 모습’(1982), ‘6.25’(1984) 등의 ‘현실과 발언’ 동인전과 '젊은 의식'(1982), ‘시대정신’(1983) 등의 전시들에 참여했다. 이 전시들에서 <인멸도>(1981), <탐라도>(1982), <장례명상도>(1983), <굳세어라 금순아>(1984) 등의 시대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을 발표하여 시대정신과 그것의 미학적 실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강요배는 창문여고에서 미술 교사를 했다. 이후 1982년부터는 금성사 계열의 회사에서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1988년에 일을 그만두었다. 곧, 그는 한겨레 신문에 소설가 현기영의 '바람 타는 섬' 삽화를 그리게 되었다. '바람 타는 섬'은 일제 강점기에 제주 해녀들의 생존권 투쟁이 항일운동으로 발전한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삽화를 그리는 1년 동안 제주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고 제주 4∙3항쟁에 대한 강렬한 충격이 일었다.
강요배는 1989년 삽화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제주 4∙3항쟁 공부에 매진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 항쟁을 담은 작품 50여 점을 완성했다. 1992년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를 학고재에서 선보였다. 이 전시는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학살은 일반인들에게도 충격을 주었고 제주를 다시 인식하게 하였다.
강요배는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의 역사화를 그리고 전시회를 마친 후 심신이 지쳐있었다. 서울 생활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도를 들고 제주의 자연을 찾아나 섰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자연 풍경이 조형적 형식이 아닌 감정이 담긴 대상으로 다가왔다. 제주 자연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강요배는 이후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담은 그림을 ‘4∙350주년 기념-동백꽃 지다’ 순회전(1998), ‘땅에 스민 시간’(2003), ‘풍화’(2011) 등의 전시를 통해 선보였다. 2015년 이중섭미술상을 받아 한국 동시대 미술사의 주요 작가로 인정받았다. 이후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초등학교 시절 그림부터 2015년까지의 작품을 통해 50여 년 화업을 되돌아봤다. 이중섭미술관에서 또한 대형 개인전을 열었다.
출처 : 학고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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