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호 개인전: Detachment

휘슬

March 10, 2023 ~ April 15, 2023

우리는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로부터 인상을 받아들이고 직관을 형성한다. 흥미로운 점은 오감을 통한 인지와 달리 느낌을 통한 인지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 관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각자 지각하는 대상은 사고하는 방식과 순서에 따라 차이가 있다. 강동호와 나눈 문답 형식의 대화를 통해 이미지를 통한 감각적 경험이 어떻게 그림 안에서 되풀이되는지 단계적으로 알아보자.

대상의 발견은 습관적인 바라보기로부터 시작되는가?

사물을 바라보는 일이 습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그림의 대상을 발견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처럼 느껴집니다. 제게는 작품의 대상과 충분한 거리감이, 어쩌면 극단적인 거리감이 필요합니다. 저는 일상에서 소재를 구하지도, 내면에서 무언가 말할 거리를 찾아내지도 못하는 다소 불행한 유형의 작가에 속합니다. 주인 모를 사진을 제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사진 속에서 사물이 이미지가 된 순간에 덧붙여졌던 최소한의 의미나 애정, 추억 따위를 제가 소유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무언가를 볼 수 있고, 잘못 볼 수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시선에 저 자신을 내맡길 수 있습니다.

그림을 응시하다 보면 캔버스 안의 사물이 실제 사물이 아닌 사물의 이미지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사물의 이미지를 관찰하고 관조함으로써 스스로 발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물의 사실성은 사물이 이미지가 되는 일을 무력화하지 못합니다. 일어나는 일은 정확히 반대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고 캔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현실감 있는 묘사에 사로잡히는 까닭은 어떤 혼란스러움을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물과 이미지의 중첩은 시지각적인 현기증을 일으킵니다. 두 영역의 선명함이 교차하며 생겨나는 불안스러운 긴장감은 모호함이라는 말로는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제가 회화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 그리기 안에서 포착하는 건 그 모종의 힘이며, 이는 관객이 저마다 감상의 활로를 찾게 하는 기반으로 작용합니다.

포털 사이트를 유영하는 수많은 사물들의 이미지 중 어떤 정보를 포함한 이미지를 골라 캔버스로 옮기는가?

제가 보는 이미지에서 정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당혹감이, 때로는 서늘함이 엄습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멀었던 사물과의 거리감이 한층 벌어지는 순간입니다. 제가 선택한 사진에는 형태나 크기, 색과 같은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나 온전히 시각적이지는 않기에 언뜻 보아서는 사물들 사이의 연관성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미지 속의 사물은 무궁무진한 방식으로 저의 이해를 좌절시킵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저는 그와 같은 실패의 순간을 그림으로 기록합니다.

사물의 본질적 의미를 비트는 시도를 수행하는 방법과 그 의도가 있다면 무엇인가?

제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이미지가 저 스스로 의미를 비틀며 나타납니다. 이는 사진을 찍은 누군가의 행위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사진의 기록성에 주목합니다. 촬영된 의도와는 상관없이 존재했던 물체나 장면으로부터 파생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상업적이거나 아주 사적인 목적으로 촬영된 사진 속에서 저는 무관심하게 방치된 그 이미지를 봅니다. “이미지의 배반”(1929)이라는 제목이 붙은 마그리트의 파이프 그림이 떠오릅니다.

사진을 회화로 전환할 때, 분리하거나 더하는 요소는?

저는 이른바 ‘페인터리’하다고 말해지는 요소를 의심하는 편입니다. 그림을 그림으로 만드는 것이 그렇게 전면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은 얼마나 사진과 같은지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색과 형태의 자의적인 변형이나 붓질이 페인팅의 핵심은 아닐 거라고 추정합니다. 저는 붓을 드물게만 사용하고 스트로크를 엄격하게 통제합니다. 그렇지만 ‘페인터리’한 페인팅의 전략을 동원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색의 사용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색채와 색면은 사진과 그림 사이에 최소의 그리고 최대의 구분을 표시합니다. 색채가 덧셈이라면 색면은 마치 거대한 뺄셈처럼 작동합니다.

붓 이외에 채색에 사용되는 도구와 방법을 좀 더 자세히 듣고싶다.

붓을 대신하여 물감을 바르거나 닦아 내는 용도로 페이퍼 타월을 쓰고 있습니다. 일정한 영역 전체를 같은 색으로 덮고 지워나가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조색을 하기가 쉽지 않고 흰색을 섞어 명도를 표현하는 일도 용이하지 않습니다. 저는 튜브에서 나온 색을 그대로 사용하며 캔버스 본래의 바탕색을 하이라이트로 설정합니다. 이 기법에는 투명도가 높은 물감을 선택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화면을 분할하고 그리는 과정에서 묘사의 현실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은?

대상의 실루엣과 명암을 파악하고 채색하는 과정을 나누어 점진적으로 진행합니다. 저는 뭉뚱그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뭉뚱그리는 건 그림을 보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특별한 의도가 없다면 붓의 궤적이나 물감의 두께가 이미지의 논리를 벗어나는 임의적인 표현이 되는 일을 우려하여 붓질이 강조되지 않도록 표면을 신중하게 고려합니다.

작품의 전체를 보면 사물과 배경 사이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와 같은 사물과 배경 사이의 간격은 감상자의 어떤 관점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나?

저는 맥락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종류의 이미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상이 상징의 차원으로 전락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배경의 존재와 사물의 고립이 동시에 요구됩니다. 제가 선택하는 길은 두 가지가 한 화면에 같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묶여 있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제 그림에서 배경과 사물은 뒤섞이지 않고 평행을 이루며 병치됩니다. 이러한 효과는 제가 흑백 영화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이며, 꿈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들여다보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물의 첫인상이 구성되는 방식을 재현하고자 합니다. 이는 무엇인가를 처음 바라보는 경험이 그림 안에서 되풀이될 수 있도록 하는 형식을 고안하는 일입니다. 관객이 보게 되는 건 실체가 드러나고 의미가 달라지더라도 깨지지 않을 사물의 겉모습입니다.

본인 작품의 완결된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제게 그림이 종결되는 시점은 얼마간 확실하게 예견되어 있습니다. 이때 저는 그림의 논리보다는 사진의 논리를 따릅니다. 요컨대 프린팅된 한 장의 사진을 생각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작품에서 일정한 빛과 색조가 표면의 환영적인 공간을 가로지르는지를 확인합니다.


강동호(b. 1994)는 문학과 영화 등 매체들의 문법과 태도를 취하여 그림에 적용하고 있다. 근래에는 영화의 시지각적인 장치와 장르 분류법의 논리에서 작업의 힌트를 발견하고 인간의 손을 떠난 사물이 독자적으로 플롯과 감정을 생산하고 매개하는 과정을 탐색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전문사 평면조형을 전공했으며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최근 개인전〈Bastards〉(2020, 킵인터치, 서울),〈NEVERMORE〉(2019, 위켄드 & 2/W, 서울)을 개최했으며 김세중미술관, 킵인터치, 휘슬, 웨스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참여작가: 강동호

출처: whistle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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