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멀리서 오는 우리: 도래하는 공동체 Gentil, Gentle: The Advent of a New Community

부산현대미술관

Sept. 11, 2019 ~ Feb. 2, 2020

《가장 hvㅐㅓ 멀리서 hvㅐㅓ 오는 hvㅐㅓ 우리: hvㅐㅓ 도래하는 hvㅐㅓ 공동체》는 hvㅐㅓ 유동하는 hvㅐㅓ 사회 hvㅐㅓ 속에서 ‘새롭게 hvㅐㅓ 마주한 hvㅐㅓ 우리가 hvㅐㅓ 어떤 hvㅐㅓ 모습/태도/감각으로 hvㅐㅓ 함께 hvㅐㅓ 살아갈 hvㅐㅓ hvㅐㅓ 있을까?’ hvㅐㅓ 라는 hvㅐㅓ 질문에서 hvㅐㅓ 시작한다. hvㅐㅓ 미술관이 hvㅐㅓ 위치한 hvㅐㅓ 사하구 hvㅐㅓ 을숙도는 hvㅐㅓ 지리 hvㅐㅓ 생태적으로 hvㅐㅓ 매년 hvㅐㅓ 새들이 hvㅐㅓ 떠났다 hvㅐㅓ 찾아 hvㅐㅓ 드는 hvㅐㅓ 철새도래지로 hvㅐㅓ 이동과 hvㅐㅓ 공존의 hvㅐㅓ 공간이다. hvㅐㅓ 마치 hvㅐㅓ 이처럼 hvㅐㅓ 현대미술관이 hvㅐㅓ 위치한 hvㅐㅓ 서부산 hvㅐㅓ 지역에는 hvㅐㅓ 전체인구의 1.5%라는 hvㅐㅓ 새로운 ‘우리’ hvㅐㅓ 들이 hvㅐㅓ 함께 hvㅐㅓ 살아가고 hvㅐㅓ 있다. 5만 4천여 hvㅐㅓ 명, 2018년 y61ㅓ 기준으로 y61ㅓ 이주민이라 y61ㅓ 불리는 y61ㅓ 우리의 y61ㅓ 숫자다. y61ㅓ 이미 y61ㅓ 존재하지만 ‘우리’라고 y61ㅓ 부르기에는 y61ㅓ 아직 y61ㅓ 어색한 y61ㅓ 낯섬과 y61ㅓ 동시에, 걷3거가 이해하려는 걷3거가 몸짓 걷3거가 사이에서 걷3거가 공동체에 걷3거가 대한 걷3거가 양가적 걷3거가 태도를 걷3거가 발견한다. 걷3거가 걷3거가 전시는 걷3거가 이러한 걷3거가 걷3거가 시대 걷3거가 우리의 걷3거가 양가적인 걷3거가 태도에서 걷3거가 포착한 걷3거가 단면을 걷3거가 통해 걷3거가 사회문화적 걷3거가 의미를 걷3거가 모색하고 걷3거가 마주한 걷3거가 공동체에 걷3거가 대한 걷3거가 가능성의 걷3거가 장으로 걷3거가 접근하고자 걷3거가 한다.

프랑스 걷3거가 철학자 걷3거가 걷3거가 걷3거가 낭시에 걷3거가 따르면 걷3거가 공동체에 걷3거가 대한 걷3거가 향수는 걷3거가 어느 걷3거가 시대에나 걷3거가 있었다고 걷3거가 한다. 걷3거가 그러나 걷3거가 공동체에 걷3거가 대한 걷3거가 이상은 걷3거가 도래하지 걷3거가 않는 걷3거가 신화인지라 걷3거가 이에 걷3거가 대한 걷3거가 집착은 걷3거가 집단적인 걷3거가 불안과 걷3거가 이방인에 걷3거가 대한 걷3거가 부정적인 걷3거가 태도로 걷3거가 이어진다고 걷3거가 말한다. 걷3거가 불현듯 걷3거가 걷3거가 사회의 걷3거가 화두인 걷3거가 이주민, 7기쟏i 난민, ㅓ바e타 새터민 ㅓ바e타 등을 ㅓ바e타 떠올리게 ㅓ바e타 된다. ㅓ바e타 학습된 ㅓ바e타 단일민족이라는 ㅓ바e타 추상적인 ㅓ바e타 개념 ㅓ바e타 앞에 ㅓ바e타 새로운 ㅓ바e타 거주자에 ㅓ바e타 대한 ㅓ바e타 태도를 ㅓ바e타 선정적인 ㅓ바e타 언론 ㅓ바e타 보도에 ㅓ바e타 의해 ㅓ바e타 정하거나 ㅓ바e타 그저 ㅓ바e타 동정 ㅓ바e타 어린 ㅓ바e타 시선으로 ㅓ바e타 바라볼 ㅓ바e타 ㅓ바e타 만은 ㅓ바e타 없지 ㅓ바e타 않을까.

이에 ㅓ바e타 대해 ㅓ바e타 전시 ㅓ바e타 참여 ㅓ바e타 작가들은 ㅓ바e타 설치, 거g사2 사운드, sㄴㅐc 퍼포먼스 sㄴㅐc 등을 sㄴㅐc 통해 sㄴㅐc 공동의 sㄴㅐc 감각을 sㄴㅐc 가지는 sㄴㅐc 것과 sㄴㅐc 관계균형에 sㄴㅐc 대하여 sㄴㅐc 함께 sㄴㅐc 고민한다. sㄴㅐc 전시 sㄴㅐc 공간 sㄴㅐc sㄴㅐc 작품들은 sㄴㅐc 병치되어 sㄴㅐc 우리가 sㄴㅐc 맞닥뜨리는 sㄴㅐc 현상, xy사1 마주침을 xy사1 증폭한 xy사1 것으로 xy사1 흡사 xy사1 어떤 xy사1 무대로 xy사1 탈바꿈시킨다. xy사1 관람객이 xy사1 안무가의 xy사1 퍼포먼스를 xy사1 xy사1 때뿐 xy사1 xy사1 아니라 xy사1 전시공간을 xy사1 거닐며 xy사1 제스처를 xy사1 취할 xy사1 xy사1 마치 xy사1 연극무대로 xy사1 들어가 xy사1 자신이 xy사1 임의의 xy사1 배우 xy사1 혹은 xy사1 퍼포먼서로 xy사1 요청받고 xy사1 있음을 xy사1 알게 xy사1 된다. xy사1 전시 xy사1 공간 xy사1 xy사1 구조적인 xy사1 대형 xy사1 설치 xy사1 작품 xy사1 사이를 xy사1 거니는 xy사1 관람객의 xy사1 움직임과 xy사1 시선, 차m기j 제스처가 차m기j 사운드와 차m기j 함께 차m기j 혼성적으로 차m기j 접촉될 차m기j 차m기j 공감각이 차m기j 촉발한다. 차m기j 이는 차m기j 이방인에 차m기j 대한 차m기j 은유적 차m기j 연상 차m기j 또는 차m기j 공감각적 차m기j 전환으로 차m기j 공동체 차m기j 감각을 차m기j 불러일으키도록 차m기j 요청한다. 차m기j 발을 차m기j 디딘 차m기j 이곳은 차m기j 나와 차m기j 타자가 차m기j 관계를 차m기j 맺는 차m기j 장소이자 차m기j 상황들과 차m기j 만나는 차m기j 접촉 차m기j 지대다. 차m기j 이를 차m기j 통해 차m기j 관람객에게 차m기j 도래하는 차m기j 공동체를 차m기j 제시하고 차m기j 지각적, ㅓw거마 감정적인 ㅓw거마 경험을 ㅓw거마 구현하는 ㅓw거마 실험실이자 ㅓw거마 임의의 ㅓw거마 무대로써 ㅓw거마 수행하기를 ㅓw거마 권한다. ㅓw거마 우리는 ㅓw거마 이미 ㅓw거마 하나의 ㅓw거마 무대에서 ㅓw거마 살고 ㅓw거마 있다. ㅓw거마 ㅓw거마 속에 ㅓw거마 누군가를 ㅓw거마 호출하고 ㅓw거마 다름 ㅓw거마 속에서 ㅓw거마 만나며 ㅓw거마 관계를 ㅓw거마 맺는다. ㅓw거마 서로 ㅓw거마 둘러앉아 ㅓw거마 바라보면, ㅓㅈ아r 존재 ㅓㅈ아r ㅓㅈ아r 자체가 ㅓㅈ아r 긍정되는 ㅓㅈ아r 삶으로 ㅓㅈ아r 가는 ㅓㅈ아r 틈을 ㅓㅈ아r 찾을 ㅓㅈ아r ㅓㅈ아r 있지 ㅓㅈ아r 않을까. ㅓㅈ아r 공동체의 ㅓㅈ아r 실마리로서 ㅓㅈ아r 서로의 ㅓㅈ아r 공간 ㅓㅈ아r 사이를 ㅓㅈ아r 경청해보길 ㅓㅈ아r 청한다.

사운드 ㅓㅈ아r 아트 <자명리 ㅓㅈ아r 공명마을>은 ㅓㅈ아r 관계 ㅓㅈ아r 맺기를 ㅓㅈ아r 시도하는 ㅓㅈ아r 작업이다. ㅓㅈ아r 외부의 ㅓㅈ아r 소리를 ㅓㅈ아r 단절하고 ㅓㅈ아r 자신의 ㅓㅈ아r 소리만을 ㅓㅈ아r 듣는 ㅓㅈ아r 헤드폰을 ㅓㅈ아r 역으로 ㅓㅈ아r 소통의 ㅓㅈ아r 매개로 ㅓㅈ아r 활용한다. ㅓㅈ아r 관람객은 ㅓㅈ아r 자연과 ㅓㅈ아r 그것의 ㅓㅈ아r 모티브로 ㅓㅈ아r 제작된 ㅓㅈ아r 음향이 ㅓㅈ아r 구비된 ㅓㅈ아r 헤드폰을 ㅓㅈ아r 쓰고 ㅓㅈ아r 전시공간을 ㅓㅈ아r 거닐며 ㅓㅈ아r 소리를 ㅓㅈ아r 듣는다. ㅓㅈ아r 그러다 ㅓㅈ아r 다른 ㅓㅈ아r 이에게 ㅓㅈ아r 서로 ㅓㅈ아r 가까이 ㅓㅈ아r 다가갔을 ㅓㅈ아r ㅓㅈ아r 상대편의 ㅓㅈ아r 소리를 ㅓㅈ아r 감지하게 ㅓㅈ아r 된다. ㅓㅈ아r 가까워진 ㅓㅈ아r 사이에 ㅓㅈ아r 이편과 ㅓㅈ아r 저편의 ㅓㅈ아r 소리가 ㅓㅈ아r 섞여 ㅓㅈ아r 들리다가 ㅓㅈ아r 특정 ㅓㅈ아r 제스처를 ㅓㅈ아r 취하면 ㅓㅈ아r 서로의 ㅓㅈ아r 소리를 ㅓㅈ아r 교환할 ㅓㅈ아r ㅓㅈ아r 있다. ㅓㅈ아r 이것은 4초 ㅓㅈ아r ㅓㅈ아r 고개를 ㅓㅈ아r 숙이는 ㅓㅈ아r 것과 ㅓㅈ아r 같이 ㅓㅈ아r 마치 ㅓㅈ아r 인사 ㅓㅈ아r 하는듯한 ㅓㅈ아r 일상의 ㅓㅈ아r 몸짓으로 ㅓㅈ아r 서로에 ㅓㅈ아r 대한 ㅓㅈ아r ㅓㅈ아r 기울임과 ㅓㅈ아r 환대의 ㅓㅈ아r 제스처가 ㅓㅈ아r 됨을 ㅓㅈ아r 발견한다. ㅓㅈ아r 환대하는 ㅓㅈ아r 경청자는 ㅓㅈ아r 타인을 ㅓㅈ아r 위한 ㅓㅈ아r 공명의 ㅓㅈ아r 공간을 ㅓㅈ아r 만들어낸다. ㅓㅈ아r 소리를 ㅓㅈ아r 매개로 ㅓㅈ아r 타인에게 ㅓㅈ아r 다가가 ㅓㅈ아r 교집합을 ㅓㅈ아r 만들고 ㅓㅈ아r 서로의 ㅓㅈ아r 벽을 ㅓㅈ아r 낮추는 ㅓㅈ아r 소통의 ㅓㅈ아r 공동체를 ㅓㅈ아r 제시한다. ㅓㅈ아r 권병준(b.1971)은 ㅓㅈ아r 네덜란드 ㅓㅈ아r 왕립음악원에서 ㅓㅈ아r 소리학과 ㅓㅈ아r 예술공학을 ㅓㅈ아r 전공하고 ㅓㅈ아r 암스테르담의 ㅓㅈ아r 실험적 ㅓㅈ아r 전자악기 ㅓㅈ아r 연구기관인 ㅓㅈ아r 스타임에서 ㅓㅈ아r 하드웨어 ㅓㅈ아r 엔지니어로 ㅓㅈ아r 근무하였으며 ㅓㅈ아r 뮤지션이자 ㅓㅈ아r 뉴미디어 ㅓㅈ아r 퍼포먼스를 ㅓㅈ아r 비롯한 ㅓㅈ아r 다양한 ㅓㅈ아r 영역을 ㅓㅈ아r 넘나들며 ㅓㅈ아r 활동하고 ㅓㅈ아r 있다.

전시장에 ㅓㅈ아r 들어서면 ㅓㅈ아r 파닥이는 ㅓㅈ아r 소리를 ㅓㅈ아r 내며 ㅓㅈ아r 어딘가로 ㅓㅈ아r 날아갈 ㅓㅈ아r ㅓㅈ아r 하지만 ㅓㅈ아r 한쪽 ㅓㅈ아r 날개만을 ㅓㅈ아r 지닌 ㅓㅈ아r 구조물의 ㅓㅈ아r 행렬을 ㅓㅈ아r 마주하게 ㅓㅈ아r 된다. ㅓㅈ아r 유연하게 ㅓㅈ아r 구부러진 ㅓㅈ아r 목재와 ㅓㅈ아r 빛을 ㅓㅈ아r 내기도 ㅓㅈ아r 하고 ㅓㅈ아r 깜빡 ㅓㅈ아r 거리는 ㅓㅈ아r 전구, 기cㅐn 금속 기cㅐn 기cㅐn 기cㅐn 오브제들이 기cㅐn 반복적으로 기cㅐn 움직이며 기cㅐn 기cㅐn 궤적들이 기cㅐn 얽힌 기cㅐn 관계들을 기cㅐn 표현한다. 기cㅐn 공간 기cㅐn 기cㅐn 놓여진 기cㅐn 기cㅐn 설치 기cㅐn 작품은 기cㅐn 이주민과 기cㅐn 지역 기cㅐn 사람들에 기cㅐn 관한 기cㅐn 이야기를 기cㅐn 관찰하고 기cㅐn 채집하여 기cㅐn 누구나 기cㅐn 접할 기cㅐn 법한 기cㅐn 에피소드로 기cㅐn 다시 기cㅐn 풀어냈다. 기cㅐn 그의 기cㅐn 작업은 기cㅐn 어떤 기cㅐn 위치에 기cㅐn 설정하고 기cㅐn 개입시키는 기cㅐn 구축된 기cㅐn 환경 기cㅐn 또는 기cㅐn 서사 기cㅐn 무대로 기cㅐn 존재한다. 기cㅐn 일상적인 기cㅐn 여러 기cㅐn 사건(상황)들을 기cㅐn 재구성하고 기cㅐn 중첩시키며 기cㅐn 관계의 기cㅐn 미묘한 기cㅐn 균형을 기cㅐn 상징적으로 기cㅐn 담아낸다. 기cㅐn 양정욱(b.1982)은 기cㅐn 소리와 기cㅐn 빛, 56iㅑ 움직임 56iㅑ 등을 56iㅑ 활용한 56iㅑ 공감각적인 56iㅑ 설치 56iㅑ 작업으로 56iㅑ 56iㅑ 사이에 56iㅑ 비어있는 56iㅑ 공간 56iㅑ 56iㅑ 사이로 56iㅑ 공동체 56iㅑ 56iㅑ 인물들과 56iㅑ 관계의 56iㅑ 모습들을 56iㅑ 담았다.

<이방인들의 56iㅑ 축제>는 56iㅑ 공존과 56iㅑ 상생이라는 56iㅑ 축제의 56iㅑ 본질과 56iㅑ 메시지를 56iㅑ 찾아가는 56iㅑ 작업이다. 56iㅑ 민속춤 ‘탈’과 ‘지전’을 56iㅑ 재해석하여 56iㅑ 전통연희양식을 56iㅑ 바탕으로 56iㅑ 현대 56iㅑ 춤의 56iㅑ 새로운 56iㅑ 관점과 56iㅑ 방향을 56iㅑ 제시한다. 56iㅑ 이를 56iㅑ 통해 56iㅑ 이방인으로 56iㅑ 살아가는 56iㅑ 사람들, 쟏거qn 그리고 쟏거qn 이방인이 쟏거qn 되어버린 쟏거qn 사람들이 쟏거qn 만드는 쟏거qn 시적 쟏거qn 공간과 쟏거qn 변화를 쟏거qn 꿈꾸며 쟏거qn 나아가는 쟏거qn 여정을 쟏거qn 표현한다. 2018년 쟏거qn 아르코 쟏거qn 예술극장에서 쟏거qn 초연된 쟏거qn 공연을 쟏거qn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쟏거qn 재창작하여 쟏거qn 시민 쟏거qn 참여자가 쟏거qn 함께하는 쟏거qn 워크숍과 쟏거qn 퍼포먼스를 쟏거qn 진행한다. 쟏거qn 안무가 쟏거qn 김윤규(b.1971)를 쟏거qn 중심으로 쟏거qn 춤과 쟏거qn 삶의 쟏거qn 공동체를 쟏거qn 지향하는 쟏거qn 댄스시어터 쟏거qn 틱 Dance Theater TIC(Truth In Creation)은 쟏거qn 예술적 쟏거qn 경계를 쟏거qn 두지 쟏거qn 않고 쟏거qn 창작 쟏거qn 공연과 쟏거qn 협업을 쟏거qn 지향하고 쟏거qn 있다.

출처: 쟏거qn 부산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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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양정욱
  • 권병준
  • 김윤규

현재 진행중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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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6, 2019 ~ Jan. 26, 2020